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28일(현지시간) 영국 버밍햄의 한 주요소에 몰린 자동차들/사진=AP연합뉴스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28일(현지시간) 영국 버밍햄의 한 주요소에 몰린 자동차들/사진=AP연합뉴스

에너지·식품 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불황 속에 물가가 치솟는 현상이다.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에너지와 식품 가격의 급등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동시에 가계와 기업의 소비, 투자 여력을 쪼그라뜨리기 쉽다.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해지는 셈이다. 

미국이 1970년대에 겪은 스태그플레이션도 불황 속에 일어난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게 큰 배경이었다.

자료=인베스팅닷컴
자료=인베스팅닷컴

◇에너지·식품 가격 고공행진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28일(현지시간) 2018년 10월 이후 3년 만에 처음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7년 만에 최고, 석탄 가격은 13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은 지난 1년 새 각각 2배, 4배 가까이 뛰었다.

식품 가격 상승세도 가파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전 세계 주요 식품가격을 반영해 내는 세계식품물가지수(FFPI)는 지난달 127.4를 기록했다. 1년 새 33% 올랐다. 

세계 식품물가지수/자료=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 식품물가지수/자료=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건 수급 불균형 탓이다. 에너지의 경우, 경기회복세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공급이 한참 달린다. 팬데믹 사태로 한동안 원유 등의 생산이 중단된 데다 최근 미국 멕시코만을 강타한 초강력 태풍 허리케인 '아이다'의 영향도 컸다. 

브라질이 흉작을 겪는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기상이변은 작황 부진을 일으켜 식품 물가를 띄어 올렸다.

◇인플레 우려에 소비심리 최악 

에너지, 식품 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주요 원자재(상품) 가격을 반영하는 블룸버그 상품현물지수는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달았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여파로 5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금리)은 28일 한때 1.045까지 올라 1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화폐 가치 하락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은 채권이 보장하는 고정 수익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채권 금리 상승(채권 가격 하락) 요인이 된다.

미국의 10년 뒤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반영하는 10년물 BEI(Break-even inflation rate)는 2.35%로 10년 만에 최고 수준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민간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높아지리라는 관측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 월가에서는 미국의 내년 근원(식품, 에너지 제외) 소비자물가지수(CPI) 연간 상승률 전망치를 연초 2.1%에서 최근 3.2%로 높였다. '인프레이션 위협은 일시적'이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진단이 설득력을 잃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 소비심리도 냉각됐다. 치솟는 물가에 뭐 하나 사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주택이나 자동차 등 내구재 구매 부담은 더 크다. 미국 미시간대가 최근 발표한 9월 소비자신뢰지수 가운데 가정용 내구재 구매 환경은 10년 만에 최악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10년물 BEI(Break-even inflation rate)/자료=FRED
미국 10년물 BEI(Break-even inflation rate)/자료=FRED

◇중앙은행 딜레마, 통화정책의 한계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난처한 처지에 몰렸다. 우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위협을 일시적이라고 계속 무시하면 임금 상승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이는 기업의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더 부추기는 악순환을 일으키기 쉽다.

반대로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자 통화긴축을 강화하면 아직 취약한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 예로 1979년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느라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는데, 이는 미국 경제를 이중침체(더블딥)로 이끌었다.

수프리야 메논 픽텟&시에 투자전략가는 28일 블룸버그TV에 "인플레이션이 뚜렷하다"며 "궁극적으로 이를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수요 파괴가 일부 해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들이 통화긴축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도 지난 27일 연설에서 최근 수급상의 충격은 수요가 회복되고 있는 가운데 공급이 제한된 게 문제라며, 통화정책으로는 반도체나 바람의 공급을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바람 공급을 거론한 건 풍력 발전 부진으로 유럽에서 전기값이 치솟고 있는 걸 지적한 것이다. 중앙은행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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