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부채위기 우려...'카산드라 경고' 기억해야

누리엘 루비니 루비니마크로어소시에이츠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 한 회견에서 "세계가 '부채함정'(debt trap)에 빠져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진=블룸버그TV 화면 캡처
누리엘 루비니 루비니마크로어소시에이츠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 한 회견에서 "세계가 '부채함정'(debt trap)에 빠져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진=블룸버그TV 화면 캡처

"세계가 '부채함정'(debt trap)에 빠져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을 정상화하지 못할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 루비니마크로어소시에이츠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뇌관이 된 미국 모기지시장 붕괴를 예고한 것으로 유명한 이다. 

루비니는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 한 회견에서 "내 걱정은 우리가 부채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라며 팬데믹 사태 이후의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을 반복하려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채함정은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빚 부담 때문에 소비, 투자 등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루비니는 "중앙은행들이 부채비율을 고려해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려 할 때면 채권시장, 신용시장, 주식시장, 경제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며 "그들은 결국 부채함정에 갇혀 정책금리를 정상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팬데믹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적극적인 통화부양에 나섰다. 각국 정부도 막대한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했다. 이 여파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루비니는 팬데믹 사태 이후의 통화·재정 부양책은 금융시스템을 뒷받침하는 데 꼭 필요했지만, 그 결과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상황이 비슷했다. 제로(0)금리와 양적완화(자산매입) 등 비전통적인 수단을 동원해 통화부양에 나섰던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08년 12월 제로금리를 도입한 뒤 7년 뒤인 2015년 12월에야 첫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2019년 다시 금리를 낮추기 시작할 때 기준금리는 2.25~2.50%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절반도 안 됐다. 금리 정상화에 실패한 셈이다. 

루비니는 "우리는 부채 슈퍼사이클에 있다"며 "중앙은행들도 덫(부채함정)에 걸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하지만, 민간·공공 부채 수준이 이렇게 높은 상황에서 정상화를 시도하면 시장붕괴, 경제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시장이나 실물경제 모두 빚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비니는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저항하면 인플레이션 수준이 높아져 고정금리 명목부채의 실질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져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액수가 고정된 부채의 상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얘기다. 

◇'스태그플레이션 부채 위기' 카산드라의 경고

루비니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불가피하게 금리가 오르고 성장세도 둔화할 것으로 봤다. 궁극적으로 그는 불황 속에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했다. 

루비니는 이날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쓴 글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며, 시장이 골디락스 시나리오를 과신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골디락스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최적의 상태를 의미한다. 골디락스 시나리오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과 공급난이 진정되면, 머잖아 인플레이션 수준이 중앙은행들의 목표치인 2%에 수렴하고, 경제성장세는 더 강해지리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루비니는 중기적으로 훨씬 낮은 성장세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맞물린 전면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공산이 크다고 봤다. 중앙은행들이 채무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기 쉬운데,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오히려 실질금리를 높여 소비자들을 채무 상환 불능 상태로 몰아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실질소득마저 쪼그라트리기 때문에 경제를 떠받치는 수요 기반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루비니는 글에서 '스태그플레이션 부채 위기'의 경종을 울리며 '카산드라'를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산드라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은 트로이는 결국 멸망했다.

비관적인 경제전망에 한때 루비니에겐 '닥터 둠'(Dr. Doom)이라는 별명이 따라 붙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스스로 '닥터 리얼리스트'(Dr. Realist)라는 새 별명을 제안했다. 비관론자보다 현실주의자의 경고가 더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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