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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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성장률이 지난 3분기에 시장 기대치인 5%에 못 미쳤다. 중국의 성장률이 5%를 밑돌기는 사실상 1991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수출이 아직 중국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중국이 1990년대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기 직전의 일본과 비슷한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30년 만에 최저 성장률

18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3분기 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4.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4.9%)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블룸버그가 조사한 전문가 전망치 중간값은 5%, 2분기 성장률은 7.9%였다.

중국의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6.8%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는 팬데믹 사태의 충격이 컸고, 새로 나온 3분기 성장률은 회복기(1분기 18.3%, 2분기 7.9%)에 급락세를 탄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1991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분기 성장률 추이(전년동기대비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중국 분기 성장률 추이(전년동기대비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더욱이 3분기 성장률은 전분기대비로 0.2%에 불과했다. 주요국 가운데 팬데믹발 침체에서 가장 빨리 탈출해 강력한 회복세를 뽐낸 중국 경제의 성장 탄력이 부쩍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이날 발표된 다른 지표들도 중국 경제의 성장둔화 우려를 부추겼다. 수출입은 분기 기준으로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고용, 소득, 소매판매, 고정자산투자(공장·아파트 건설) 등이 모두 부진했다. 내수가 취약하다는 얘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같이 잘 살자'며 주창한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의 3분기 성장률에 대한 기대치는 처음부터 높지 않았다. 최근 중국 2위 부동산개발업체인 에버그란데(헝다)그룹의 채무위기가 불거진 데다 전력난까지 불거지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는 기술업계에 집중했던 기업단속을 전방위로 확대하기도 했다.

◇"올해 8% 달성" 인민은행의 자신감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고용과 소득의 회복 부진이 중국 경제의 약 40%를 차지하는 개인소비의 걸릴돌이 될 것으로 본다. 

헬렌 차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블룸버그TV와 한 회견에서 수요 측면의 투자가 미약하고, 공급 측면은 전력난이 심각하다며 중국의 4분기 성장률이 3~4%로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중국 당국은 올해 성장률 목표(6% 이상)는 무난히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이강 총재는 전날 경제 성장세의 탄력이 다소 완만해졌지만, 회복세는 온전하다며 올해 성장률이 8%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상대적으로 낮게 잡은 만큼 성장둔화에 맞서 적극적인 추가 경기부양에는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금처럼 선별적인 재정통화 부양을 지속하되, 지급준비율(지준율) 인하 같은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1990년대 거품붕괴 일본이 떠오르는 이유

중국이 당장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구조적인 문제가 중국의 급격한 성장둔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관론자들은 중국이 1990년대 일본과 같은 처지에 몰렸다고 본다. 1980년대 최대 호황을 누린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 자산거품 붕괴를 시작으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다. 장기불황은 현재진행형으로, 사실상 '잃어버린 30년'이다.

중국이 30년 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일본과 닮은 점으로는 ①막대한 부채 ②인구 고령화 ③미국과의 불화 등이 꼽힌다.

중국 비금융기업 부채 추이(백만달러)/자료=FRED
중국 비금융기업 부채 추이(백만달러)/자료=FRED

①부채 뇌관 터지나

일본 경제의 추락은 부동산거품 붕괴에서 비롯됐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아직 1991년 정점을 회복하지 못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일본의 주택용 부동산 가격은 30년 전보다 40% 가까이 낮은 상태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 간판 기업들은 1980년대 미국 경쟁사와 랜드마크 부동산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물론 막대한 부채를 동원했는데, 이 거품도 30년 전 함께 터졌다. 

중국의 부동산거품, 부채거품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에버그란데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 경제의 가파른 성장을 이끈 성장엔진이 바로 부동산이다. 에버그란데 사태에서 보듯 중국의 부동산거품은 부채거품과 맞물려 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른다.

일본 주거용 부동산 가격 추이(2010년=100 기준)/자료=FRED
일본 주거용 부동산 가격 추이(2010년=100 기준)/자료=FRED

②노동인구 정점 찍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노동가능인구는 2015년에 이미 정점을 찍었다. 중국이 인구억제를 위해 1980년부터 시행한 한자녀 정책을 폐지한 해다. 출생률을 낮춘 한자녀 정책은 중국의 고령화를 촉진했다.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중국 정부 통계로 보면, 전체 인구 가운데 60세 이상,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각각 18.7%, 13.5%에 이른다. 20~30년 뒤에는 이 비중이 각각 38%, 30%로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노동가능인구수 추이(십억명)/자료=세계은행
중국 노동가능인구수 추이(십억명)/자료=세계은행

1990년대로 들어서던 일본에서도 급격한 고령화가 한창이었다. 저출산 추세와 맞물린 고령인구 증가는 노동가능인구 부족을 의미한다. 경제성장동력이 약해지고, 부양 부담은 커지는 셈이다.

마이크 리델 알리안츠 글로벌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중국의 '인구폭탄'이 이미 터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의 인구 문제는 결국 부채 문제와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③공조 절실한데...G2 불화  

미국 사회학자 에즈라 보겔이 1979년에 낸 '일등국가 일본'(Japan As No. 1)이라는 책은 1980년대 일본의 부상이 미국에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의 부제가 '미국에 주는 교훈'이다. 

미국 사회학자 에즈라 보겔이 1979년에 낸 '일등국가 일본'(Japan As No. 1) 표지/사진=아마존 웹사이트
미국 사회학자 에즈라 보겔이 1979년에 낸 '일등국가 일본'(Japan As No. 1) 표지/사진=아마존 웹사이트

일본은 세계 최강국 미국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일본산 자동차를 문제 삼는 등 미국 정부는 대일 무역 공세를 강화했다. 

세계 양강(G2)으로 부상한 중국도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트럼프 시절의 대중 반무역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G2의 불화가 세계 경제에 줄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회복을 주도해온 두 나라의 갈등은 공조가 절실한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른다. 중국의 성장둔화는 자칫 세계 경제의 '일본화'(Japanification)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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