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자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같이 잘 살자며 주창한 '공동부유'발 규제 압력이 이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부자들은 이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지가 아니라 재산을 어떻게 지킬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블룸버그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올 들어 매주 새로운 억만장자가 탄생했다. 덕분에 중국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 가는 억만장자 보유국이 됐다. 미국 억만장자 수는 830명, 중국은 750여명에 이른다. 인도, 러시아, 독일의 억만장자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블룸버그억만장자지수에 이름을 올린 이들(순자산 10억달러 이상) 가운데 중국인 비중은 2013년 6%에서 올해 22%로 높아졌다.
◇'공동부유' 불확실성
중국에서는 최근 공동부유 실현을 위한 '홍색규제'와 '홍색정풍운동'이 한창이다. 중국 정부는 공동부유가 부자들을 강탈하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최근 강화되고 있는 규제의 날은 부자들을 위협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블룸버그는 22일 중국 부자들의 근심 한 가운데에는 공동부유에 대한 중국 당국의 미사여구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부자들의 기부가 최근 부쩍 늘어난 것도 불안감을 방증한다. 중국 당국에서는 재산세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중국 상하이로펌에서 초고액자산가들을 상대하는 에코 자오 파트너는 "몇 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투자방법에만 관심을 뒀는데, 이제는 더 이상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 보이는 게 상책
중국 자산관리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부자들의 가장 쉬운 대응책은 납작 엎드려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음식배달 플랫폼인 메이퇀의 왕싱 창업자는 지난 5월 소셜미디어에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비판한 당나라 시를 올렸다가 중국 정부에 찍히는 신세가 됐다. 이 여파로 날린 재산이 25억달러(약 3조원)에 이른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리모 스캔들에 휩싸인 중국 여배우 정솽은 탈세 혐의로 2억9900만위안(약 551억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홍콩의 한 자산관리업계 관계자는 불안감에 휩싸인 중국 고객들이 웨이보 같은 소셜미디어를 끊는 것은 물론 언론과의 인터뷰도 피하려 한다고 전했다. 대신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회사를 통해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북적이는 지하환전소
중국은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개인의 연간 환전한도를 5만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따른 국경통제와 방역 여파로 부자들의 재산 해외 이전은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민의 암호화폐 거래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때문에 중국 부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지하환전소를 찾는 수요가 급증했다고 한다.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비용도 치솟고 있다. 1년 전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수수료가 최근 20%까지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 내에서 위안화를 주고 받고, 해외 계좌를 통해 다시 달러가 오가는 식의 개인간 송금도 횡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상속세 걱정에 신탁 인기
중국에는 현재 상속세가 없지만, 머잖아 도입되리라는 우려도 크다. 중국 부자들이 최근 가족 신탁에 몰리고 있는 이유다. 중국 상업은행이 추산한 신탁 자산은 불과 10년만인 올해 말 10조위안에 이를 전망이다.
중국 내 불확실성 탓에 케이먼군도, 버뮤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회피처의 해외신탁을 찾는 수요도 꾸준하다고 한다.
◇투자다변화, 해외투자 조언도
에이드리언 취르허 UBS글로벌웰스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 투자자들이 직면한 공동부유발 불확실성이 크다며,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강조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등 중국에서 정책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분야로 투자처를 넓혀야 한다는 조언이다. 중국에 베팅하려는 해외 투자자들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해외 투자 확대를 권하는 이들도 많다. 해외 증시 투자가 중국 내 경제 충격에 대한 헤지(위험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증시가 글로벌 증시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한데, 중국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은 30~50%에 이른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