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잇따르는 등 중앙은행의 통화부양이 정점을 지나 한풀 꺾일 분위기다. 세계 경제 회복세가 새 국면을 맞은 셈이다.
◇신흥국은 이미 금리인상, 선진국도 준비태세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조기 긴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연준 내부에서 양적완화(자산매입)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FOMC 위원들은 2023년 말에 적어도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당초의 2024년보다 예상시기가 빨라졌다.
중국은 이미 선택적인 통화부양 기조 아래 눈덩이 부채를 통제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통화긴축에 돌입한 셈이다.
다른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금리인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연준의 조기 긴축 신호가 맞물리면서다. 멕시코, 헝가리, 체코 등이 지난주에 기준금리를 올렸고, 브라질, 터키, 러시아도 이달 중에 금리를 인상했다. 브라질, 러시아의 금리인상은 이번이 올 들어 세 번째다.
신흥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통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을 억제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수 있다. 미국 달러 자산과의 금리차를 좁혀 글로벌 자금의 이탈을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뉴질랜드 같은 나라의 중앙은행들도 통화부양 기조에서 후퇴하기 위한 밑그림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내년 후반, 영국은 내년 중에 각각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전망이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오는 9월과 12월에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은 사실상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24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설명회에서 "연내 늦지 않은 시점에 통화정책을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통화정책 과도기 관건은 '속도'
시장에서는 그래도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 선회 속도가 너무 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경제 정상화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주요국 정책당국이 인플레이션 위협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어서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통화부양 기조를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중앙은행들이 맞은 통화정책 과도기가 세계 경제 회복세와 글로벌 금융시장 향방에 매우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정책 기조 전환이 너무 빠르면 시장의 신뢰가 흔들려 경기회복세에도 제동이 걸리고, 너무 느리면 경기과열이나 자산가격 거품 등 경기·금융불안이 불가피하다.
한 예로 연준이 인플레이션 지표로 가장 선호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은 5월치가 전년대비 3.4%로 199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준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를 훌쩍 넘었다.
주목할 건 통화부양 기조가 꺾이려는 시점이 각국 정부의 재정부양 완화, 중국의 성장둔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셰인 올리버 AMP캐피털인베스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통화부양 자극과 더불어 경제 재개, 재정부양이 시들해지면서 세계 경제 회복세도 느려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평균금리 현재 1.27%→연말 1.28%
낙관론자들은 경기회복세가 아직은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 움직임을 견딜 만하다고 본다. 중앙은행들이 노골적인 통화긴축에 나서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재정부양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운데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터져나오면 경기회복에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파월 의장도 지난 22일 하원 청문회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까지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테이퍼링을 언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더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만수르 모히우딘 뱅크오브싱가포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통화긴축은 점진적일 것"이라며 "연준과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이 올해 인플레이션이 높아진 게 경제 재개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투자자와 대중에게 납득시키면 통화정책은 향후 2년간 느슨하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P모건체이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현재 1.27% 수준인 글로벌 평균 금리가 연말까지 1.28%로 오르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출구찾기가 쉬운가?...금융위기의 경험
비관론자들은 경험상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출구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랬다. 수년간 지속된 통화부양 기조를 꺾으려던 시도는 투자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크리스 마시 엑샌티데이터 선임 고문은 주요 10개국 중앙은행들이 팬데믹 사태 이후 늘린 장부상 자산만 11조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그만한 돈이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풀렸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간 쌓인 자산과 맞먹는 규모라고 한다.
비관론자들은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중앙은행이 한발짝만 물러나도 충격이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설립자는 최근 열린 카타르경제포럼에서 "연준이 긴축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데,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통화긴축에 따른 충격 또한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그는 "자산 듀레이션(투자금 회수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시장과 민감한 경제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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