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테이퍼링 시사에 '긴축발작' 대신 '긴축평온'
"인플레이션 향방이 관건"...'과도한 안정' 우려도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 16일 연준이 양적완화(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연준은 같은 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2023년 말에 최소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당초 2024년으로 예고한 첫 금리인상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뜻밖인 건 시장이 상대적으로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적어도 2013년 6월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 가능성을 처음 시사한 뒤 일어난 '긴축발작'(taper tantrum)은 없었다. 연준의 조기 긴축 신호에 뉴욕증시는 급락했지만, 곧 급반등했고 미국 국채시장도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2013년 긴축발작 때 요동쳤던 신흥국 증시와 정크본드시장도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긴축발작이 '긴축평온'(taper tranquility)으로 바뀐 셈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금융시장이 연준의 조기 통화긴축 신호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게 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하나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추이/자료=FRED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추이/자료=FRED

①"연준, 가이드 잘했다"

우선 연준이 투자자들이 정책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장을 더 잘 유도해왔고, 시장도 이 방식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준은 월간 1200억달러 규모의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를 매입하고 있는데, 매입 규모를 줄이기 위한 내부 논의를 시작했다. 아울러 연준 인사들은 지난 1월보다 빨라진 기준금리 인상 시간표를 제시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위협은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게 특히 주효했다는 평가가 많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당장은 경제 재개에 따른 수요 폭발로 물가안정 목표 수준을 넘어 가속화하고 있지만, 머잖아 해소될 것으로 본다. 이는 연준의 통화긴축 행보 또한 완만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②"처음도 아닌데..." 

시장이 동요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13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도입한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실험의 끝에 대해 연준은 물론 시장도 잘 알지 못했다. 짐 보겔 FHN파이낸셜 금리전략가는 "시장에는 적어도 연준이 교훈을 얻었다는 데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연준이 양적완화 축소, 중단에 따른 시장의 반응을 충분히 경험한 만큼 시장의 우려도 줄었다는 얘기다.

더욱이 최근 시장 분위기는 2013년보다 호의적이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올해 1분기에 75bp(0.75%포인트) 올랐지만, 최근에는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금리인상에 나서도 향후 몇 년간 그 폭이 제한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금리선물시장에서는 연준이 전처럼 몇 년에 걸친 금리인상을 2% 수준에서 멈출 것으로 본다. 

미국 기준금리 추이(상한 기준)/자료=FRED
미국 기준금리 추이(상한 기준)/자료=FRED

연준은 2014년 1월 테이퍼링을 공식 발표한 뒤 같은 해 10월 양적완화를 완전히 중단했다. 2015년 말에는 금융위기 이후 첫 금리인상에 나섰다. 금융위기 이후 제로(0~0.25%) 수준에 묶어뒀던 기준금리를 2019년 2.50%까지 올린 뒤 미·중 무역전쟁 등에 따른 경기둔화 여파로 다시 금리인하 기조로 돌아섰다. 

◇"정책기조 바꾸는 데 능숙한" 파월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의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연준의 구식 통화긴축 로드맵이 통하지 않는 경우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금리인상 국면에서 단기금리가 많이 오르지 않은 데 대해 시장이 과도한 안정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연준의 예상보다 더 급격히, 지속적으로 높아지면 연준의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통화긴축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2013년에는 물가상승세가 미약했지만, 지금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재정부양 기조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 개인소비지출(PEC) 물가지수 변동률 추이/자료=FRED
미국 개인소비지출(PEC) 물가지수 변동률 추이/자료=FRED

제레미 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확신할 수는 없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이 예상치 못한 수준이 되면 연준은 시장을 지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준 이사 출신인 그는 친구이자 옛 동료인 파월 의장에 대해 정책기조를 바꾸는 데 능숙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장이 지금은 평온하지만 몇 개월 뒤에는 파월이 민첩성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도 지난 16일 회견에서 "우리는 시장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바를 다할 것"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거시경제 목표를 달성하면, 적절히 테이퍼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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