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AFP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에 대한 낙관론을 펼쳤지만, 전문가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더 적절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기 통화긴축, 구체적으로는 양적완화(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얘기다.

◇파월 "인플레이션, 목표치로 수렴할 것"

파월 의장은 이날 하원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연준 웹사이트에 공개한 사전 증언에서 "인플레이션이 최근 몇 개월 동안 현저하게 높아졌다"며 유가 상승과 미국 경제 재개에 따른 소비의 반등을 배경으로 거론했다.

그는 다만 "일시적인 공급효과(수요 급증에 따른 공급난)가 누그러지면,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장기 목표를 향해 다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물가상승률이 머잖아 연준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로 수렴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일련의 발언은 파월 의장이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회견 서두에 한 말과 다름없다.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그대로였다. 그는 "팬데믹이 경제에 위험으로 남아 있다"면서도 "경제가 지속적인 개선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고용시장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률이 오르면 향후 몇 개월간 고용증가세가 가팔라질 것"이라며 "현재 고용증가세를 억누르고 있는 팬데믹 사태 관련 요인들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FOMC 위원들은 지난 회의 뒤에 낸 중장기 정책전망에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물가상승률이 올해 3.0%에서 내년에는 2.1%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근원 PCE물가상승률은 연준이 가장 선호하는 인플레이션지표다. 지난 3월 1.9%에서 4월 3.1%로 급등했다. 근원 PCE물가상승률이 2%를 넘은 건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오는 25일 발표될 5월치는 3.4%에 이를 전망이다.

근원 개인소비지출(PCE)물가지수 변동률 추이(전년대비)/자료=FRED
근원 개인소비지출(PCE)물가지수 변동률 추이(전년대비)/자료=FRED

연준은 지난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와 미국 경제 회복세에 대한 낙관론을 근거로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FOMC 위원들은 연준이 2023년 말에 0.25%포인트씩 두 차례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고 봤다. 2024년에야 첫 금리인상이 있을 것이라던 전망이 앞당겨진 것이다.

예상보다 빠른 연준의 금리인상 시간표를 받아든 글로벌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지난주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다우지수가 3.5% 추락했다. 주간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많이 떨어졌다. S&P500도 지난 2월 이후 최대인 1.9% 내렸다. 

뉴욕증시는 이날 지난주 연준발 충격에서 벗어난 듯 랠리를 펼쳤다. 다우지수는 1.8% 오르고, S&P500은 1.4% 뛰었다. 지난주 3대 지수 가운데 유일하게 상승세를 지킨 나스닥지수 역시 0.8% 올랐다. 경제는 계속 좋아지고 있고,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은 낮아질 것이라는 파월의 낙관론에 호응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캐플란·블러드 "조기 테이퍼링" vs 윌리엄스 "아직은"  

그러나 연준 안팎의 유력 인사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조기 긴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시장도 그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도 뒤따랐다.

연준 내부에서는 로버트 캐플란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와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가 대표적이다. 

캐플란 총재는 이날 한 포럼에서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기보다는 일찌감치 가속페달에서 서서히 발을 떼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통화부양에 따른 부작용에 밀려 통화긴축 기조로 급선회하는 것보다 위기관리 차원에서 일찍이 점진적인 긴축에 나서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는 양적완화가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며, 조기 테이퍼링을 주장했다.

캐플란은 조기 테이퍼링의 근거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들었다. 그러면서 PCE물가상승률이 내년에 2.4%로 연준 목표치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게 댈러스 연은의 전망이라고 소개했다. FOMC 예상치인 2.1%보다 한참 높은 것이다.

불러드 총재도 같은 포럼에서 연준이 지난주 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한 건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논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근원 PCE물가상승률이 내년에 2.5%에 이를 것이라며,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봤다. 

반면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는 조기 통화긴축에 반대했다. 그는 이날 온라인 연설을 위해 미리 준비한 원고를 통해 인플레이션 위협은 일시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물가상승률이 올해 3% 수준에서 내년과 내후년에는 2%로 수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윌리엄스는 특히 여전히 높은 수준의 실업률(5월 기준 5.8%)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노동시장이) 전력을 되찾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미국 실업률 추이/자료=FRED
미국 실업률 추이/자료=FRED

윌리엄스 총재의 발언은 사실상 파월 의장의 입장을 대변한다. 뉴욕 연은 총재는 보통 연준 의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뉴욕 연은 총재는 해당 이사회가 후보를 결정하면 연준 이사회가 추인하는 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뉴욕 연은 총재는 12명의 지역 연은 총재들 가운데 연준 내에서 영향력이 가장 세다. 뉴욕 연은 총재만 유일하게 연준 의장을 비롯한 연준 이사들과 함께 FOMC에서 영구 투표권을 행사한다. 나머지 연은 총재들은 4명씩 돌아가면서 투표권을 쥔다. 캐플란과 블러드는 올해 투표권이 없다.

◇달리오·서머스도 긴축 지지...시장 충격 우려도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트의 레이 달리오 설립자와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카타르경제포럼에서 미국 경제의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달리오는 "연준이 긴축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데,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화긴축에 따른 충격 또한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그는 "자산 듀레이션(투자금 회수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시장과 민감한 경제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통화부양 기조는 그동안 장기 채권 투자를 부추겼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 미국 국채를 대거 매입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기과열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장기채권이 투자매력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채권이 보장하는 고정수익 가치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으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달리오는 정작 3% 수준의 잠재적인 인플레이션보다 금융자산 가격 상승세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과도한 유동성이 일종의 자산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연준이 브레이크를 아주 약간만 건들어도 시장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이는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준이 미세한 통화긴축 움직임만 보여도 자산거품이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포럼에서 달리오와 대담에 나선 서머스도 연준의 통화긴축 신호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연준이 제한적으로나마 현실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경기과열이 통화정책 대응을 필요로 할 것 같다고 깨달은 걸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플레이션 수준이 시장 예상치를 이미 웃돌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예상을 수정해야 할 뿐 아니라 전망이 크게 빗나가게 한 오류가 뭔지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머스는 전문가들이 지난 2월만 해도 올해 물가상승률이 2%를 조금 웃돌 것이라는 데 공감대를 모았지만, 올 들어 지난달까지 이미 이 수준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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