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둠'(Dr. Doom)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가 코로나19발 거품이 결국 서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2일(현지시간) 프로젝트신디케이트(PS)에 올린 글(The Covid Bubble)에서 신고점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 증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경제적 불평등을 낳고 있다며, 음악이 멈추면 투자 전문가들이 모인 '월스트리트'가 아닌 서민들의 생업전선 '메인스트리트'가 가장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루비니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다.
#저들만의 세상
그는 고공행진하고 있는 미국 증시에 개인투자자(개미)들이 대거 달려 들고 있지만, 증시 신고점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료가 근거다. 순자산 규모 하위 50% 가계가 보유한 미국 증시 시가총액 비중이 0.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위 10%는 전체 시총의 87.2%, 1%는 51.8%를 보유하고 있다.
루비니는 최근 증시 상승이 기술 대기업(빅테크)의 부상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도 주목했다. 아마존이 일자리를 하나 창출하는 동안 소매 일자리 3개가 사라진다는 통계도 함께 들었다.
그는 불평등에 따른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새로울 건 없다고 했다. 생활비 부담, 소비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으니 돈에 쪼들리는 노동자들이 중산층을 따라잡기 어려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민주화
루비니는 이 문제에 대한 처방이 지난 수십년간 반복됐다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해법은 이른바 '금융민주화'였다. 어려운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이 집을 ATM(현금자동입출금기)으로 활용하게 하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불어난 신용거품은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터졌다. 이때 많은 이들이 일자리와 집, 저축한 돈을 잃었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밀레니얼 세대(1981~96년생)의 충격이 컸다.
루비니는 밀레니얼 세대가 또다시 금융민주화의 '봉'이 됐다고 지적했다. '로빈후드'와 같은 공짜 주식거래앱을 통해 증시에 처음 뛰어든 이들이 대표적이다.
루비니는 최근 미국 증시에서 논란이 된 게임스톱 광풍을 사악한 헤지펀드에 맞선 개미들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보는 건 추악한 진실을 가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희망도, 일자리도, 기술도 없고 빚만 진 개인들이 또다시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게임스톱 사태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그리는 건 아무 것도 모르는 아마추어 투자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기 위한 또 다른 술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08년처럼 뻔한 결과는 자산거품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재정적자 화폐화
루비니 교수는 시장이 연준과 미국 재무부의 '재정적자 화폐화' 실험을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금융위기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재무부를 통해 국채를 발행해 재정부양에 나서고, 연준이 양적완화로 국채를 매입하고 있는 게 사실상 재정적자 화폐화와 다를 바 없다며 부작용을 걱정했다.
재정적자 화폐화는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이른바 'MMT' 논란과 맞닿아 있다. MMT는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나라라면, 채무 상환에 필요한 돈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파산할 일이 없다고 본다. 정부가 완전고용을 달성할 때까지 재정지출을 극대화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돈을 계속 찍어내는 데 따른 인플레이션 위험은 나중에 세수를 늘리고 국채를 발행해 과잉 유동성을 거둬들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를 반대하는 주류 경제학은 경기부양을 위한 일시적인 재정확대(재정적자)는 용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차별적인 재정확대로 인플레이션 고삐가 풀리면 국가 경제가 파탄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실상의 재정적자 화폐화가 당장 경기과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루비니는 이런 걱정이 연준의 조기 금리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국채의 명목금리와 실질금리가 이미 상승세를 타면서 주식 같은 위험자산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준발 긴축발작에 대한 우려 탓에 시장에 호재가 돼야 할 경기회복이 시장 조정의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가 재정부양
루비니는 미국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재정부양의 효과도 의심했다. 현금 직접 지원 방안이 포함돼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미 공과금이나 대출 등을 연체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액이 빚 상환이나 저축에 쓰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실제 소비로 이어져 경기부양 효과를 낼 지원액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할 것으로 봤다.
루비니 교수는 이런 이유로 추가 재정부양이 경제성장, 인플레이션, 국채 금리에 미칠 영향은 예상보다 작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재정적자 화폐화와 갑작스러운 공급 감소가 맞물리면 불황 속에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올해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봤다. 급작스러운 공급 감소는 미·중 신냉전 등 보호무역을 자극할 외부 변수가 동반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스태그플레이션
루비니 교수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세가 기대치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나타나고 있고, 백신이 팬데믹 사태에 종지부를 찍을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여전히 많은 중소기업이 파산 직전에 있고, 또한 많은 이들이 장기 실업사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루비니 교수는 자산시장을 완전한 거품 상태라고 볼 수 없지만, 걱정할 만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증시의 경우 주가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인 주가수익비율(PER)이 1929년과 2000년 거품이 터지기 직전만큼이나 높다고 지적했다. 레버리지(차입) 수준, '스팩'(SPAC), 기술주, 암호화폐 등도 거품 우려의 근거로 들었다.
스팩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단지 IPO로 조달한 자금이 전부인 '껍데기 회사'(shell company)다. 비상장 기업 인수로 '묻지마 투자'를 유발해 시장 과열, 거품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루비니는 상황이 이런 만큼 연준이 통화긴축에 따른 시장 붕괴를 우려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민간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가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막으면, 중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계속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자산시장과 경제의 경착륙 리스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