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폭염, 산불 등 역대급 기상이변 선진국 강타...전문가들 전망 실패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이 지난 15일 폭우로 물에 잠긴 바트 노이어나르-아르바일러 시내를 시찰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이 지난 15일 폭우로 물에 잠긴 바트 노이어나르-아르바일러 시내를 시찰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홍수가 독일과 벨기에를 삼켰다. 로이터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현재 사망자가 최소 170명에 이른다. 독일에서만 143명이 숨졌다. 실종자가 수백명에 달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일부 지역은 수위가 너무 높아 접근이 불가능하고, 통신이 끊긴 지역도 여러 곳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최근 살인적인 폭염과 산불에 휩싸였다. 지난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의 수은주는 역대 최고인 섭씨 54.4도까지 치솟았다. 캐나다에서는 마을 하나가 통째로 잿더미가 돼 지도에서 사라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선진국을 강타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이 그동안 기후변화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비판한다. 기후재앙을 피할 준비도, 기상이변에 적응할 준비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리데리케 오토 영국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소 부소장은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독일인으로서 말하자면, 날씨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건 완전히 생경한 생각"이라며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게 적응일 수도 있다는 인식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선진국 vs 개도국..."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재앙은 그동안 개발도상국에서 두드러졌다. 선진국은 온실가스인 탄소 배출량을 줄이라고 개도국을 압박했을 뿐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어려운 개도국은 그간의 지구온난화는 잘 사는 나라들의 산업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맞섰다.

2013년 초강력 태풍 '하이얀'이 필리핀을 초토화했을 때다. 개도국 대표들은 선진국에 자신들의 책임이 없는 기후변화 재앙 피해를 수습할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부자나라들은 단칼에 거부했다.

울카 켈카르 세계자원연구소(WRI) 인도 지부 기후 책임자는 "개도국의 기상이변 이벤트는 막대한 사망자와 파괴를 초래한다"며 "이는 산업국(선진국)들이 지난 100여년간 배출한 온실가스로 악화된 게 아니라 우리(개도국) 책임으로 치부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부자나라들을 강타한 재앙은 개도국들이 세계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는 게 거짓 경고가 아님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모하메드 나시드 전 몰디브 대통령은 최근 기후취약국포럼(CVF)을 대표해 낸 성명에서 "모두가 (기후변화로) 똑같은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비극적인 이번 사태(독일 홍수)는 나처럼 작은 섬 나라에 살든, 발전한 서유럽 국가에 살든, 기후 비상사태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고 말했다.

몰디브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이번 세기 안에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

지역·국가별 탄소배출량·비중(2017년 기준)/자료=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
지역·국가별 탄소배출량·비중(2017년 기준)/자료=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

◇COP26 앞두고..."절묘한 타이밍"

최근 선진국에서 잇따른 기후재앙은 타이밍이 절묘하다.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최근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어서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 14일 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 이른바 '핏 포 55'(Fit for 55)를 공식 발표했다.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고,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 제품에 '탄소국경세'를 물리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일련의 대책, 특히 탄소국경세 제안에는 EU 안팎에서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지구온난화 책임과 탄소 감축 의무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의 '네 탓' 공방과 다를 바 없다. EU 역내에서도 경제가 취약한 주변국들의 반발이 거세다. 

EU는 '기후행동사회기금'(Climate Action Social Fund)으로 취약한 저소득 가계와 중소기업 등을 지원한다는 방침인데, 이 또한 개도국들의 반발을 사기 쉽다. 

안 그래도 세계는 그동안 기후변화 위기에 제대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핏 포 55'를 둘러싼 갈등이 COP26에도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때마침 선진국을 휩쓸고 있는 기상이변은 보다 강력한 협력을 촉구하는 경고일 수 있다.

지역·국가별 탄소배출량·비중(1751~2017년 누적)/자료=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
지역·국가별 탄소배출량·비중(1751~2017년 누적)/자료=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

◇만시지탄?..."기후변화 적응해야"

전 세계 190여개국은 2015년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위한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파리협정은 산업혁명 이후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상당히 낮게 유지하는 걸 과제로 삼았다. 더 가깝게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는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해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다. 

문제는 파리협정 채택 이후 탄소 배출량이 계속 늘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8년 낸 특별보고서의 경고도 소용 없었다. 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때보다 1.5도 이상 오르면 인류와 모든 생명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탄소 배출량은 줄지 않았고, 산업혁명기인 1880년 이후 지구 기온 상승폭은 이미 1도를 넘어섰다. '재앙'을 막기 위한 상승 억제선인 1.5도까지 0.5도도 남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기상이변의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세진 게 평균 기온 상승, 즉 지구온난화 탓이 틀림없다고 본다.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소의 오토 부소장과 국제 연구진은 최근 미국 북서부지역을 덮친 이례적인 폭염 같은 기상이변도 지구온난화가 아니라면 없었을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기상이변이 앞으로 더 심하게,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류가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듯, 당장 어쩔 수 없게 된 기후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 기상청 소속 기후학자인 리처드 벳츠는 NYT에 "우리가 이미 초래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며 "아울러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을 줄여 더 큰 변화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상학자들이 '도구 탓'하는 이유

전문가들은 다만 기존 컴퓨터를 활용한 모델만으로는 기상이변이 앞으로 언제, 어느 정도 수준으로 발생할지 전망할 길이 없다고 토로한다. 기상학자들은 수십년 전부터 지구온난화가 폭우와 홍수, 열파(heat wave)나 열돔(heat dome) 같은 가마솥 폭염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번처럼 강력한 게 이 시점에 닥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망 실패다.

팀 팔머 옥스퍼드대 교수는 BBC에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에는 공감하지만, 우리가 어느 수준의 비상상황에 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답을 얻을 마땅한 도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보다 정확한 전망을 위해서는 기상학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수준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데임 줄리아 슬링고 전 영국 기상청 수석 과학자는 슈퍼컴퓨터를 마련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들겠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 닥칠 기상이변이 초래할 비용에 비하면 별 게 아닐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럼에도 당국자나 정치인들이 기후변화 적응에 선뜻 나서지 않는 건 정치적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만다 몬타노 미국 매사추세츠해양대 교수는 "자기 지역에 새 홍수 인프라가 들어설 때면 그들은 더 이상 현직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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