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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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14일(현지시간)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를 공식 발표했다. 궁극적으로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는 '넷제로'(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중간단계 조치다.

'핏 포 55'에는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탄소국경세' 도입 등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 주요국·경제권에서 도입한 기후변화 대책으로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최종 승인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알아야 할 내용을 5가지로 정리했다.

①내연기관 신차 판매 2035년 금지...업계 반발 

EU 역내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가운데 자동차를 비롯한 운송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분의 1에 달한다.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부문 다음이다. 

중요한 건 운송 부문에서는 유독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2050년까지 운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90%까지 줄인다는 목표다. 

최대 표적은 단연 자동차다. EU는 당초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21년 대비 37.5% 줄기로 했지만, 이번에 감축 목표를 55%로 높였다. 2035년부터는 100% 줄이도록 했다. 2035년부터 EU 역내에서 등록되는 모든 신차는 탄소 배출량이 '0'이 되는 셈이다.

유럽연합(EU)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이산화탄소 킬로톤)/자료=유럽환경청, 브뤼겔
유럽연합(EU)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추이(이산화탄소 킬로톤)/자료=유럽환경청, 브뤼겔

자동차업계는 반발한다. 힐데가르트 뮐러 독일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은 지난 7일 회견에서 "2035년에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한다는 건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모든 엔진 자동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것"이라며 "혁신 가능성을 닫아 소비자의 선택 자유를 제한하고 고용에도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EU는 전기차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회원국에 공공 충전소 확충을 제안했지만, 인프라 불균형이 심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EU 내 전기차 충전시설은 네덜란드가 약 6만6665개로 가장 많고,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약 4만5000개로 그 다음이다. 세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②'탄소배출=비용'...탄소배출권거래제 확대개편

EU는 '핏 포 55'를 통해 온실가스인 탄소를 배출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통해서다.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은 ETS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사는 식으로 초과 배출분에 대한 비용을 무는 식이다. 

EU는 이번에 ETS 시장 개편을 통해 2026년부터 운송수단·건물에도 탄소 배출 비용을 부과하기로 하고 해운 부문을 처음으로 대상에 포함시켰다. EU는 또 탄소 배출량이 많은 항공기, 선박 연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③"'탄소누출' 막아야"...'탄소국경세' 도입

'핏 포 55'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EU 회원국들이 수입하는 제품 가운데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이른바 '탄소국경세'를 물리는 조치다. 

EU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등 5개 품목을 우선 대상으로 삼아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CBAM를 도입해 2026년부터 본격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탄소국경세는 ETS 시장의 탄소가격 수준에 맞춰진다. EU집행위원회는 2030년 시점의 탄소국경세 관련 수익이 연간 91억유로(약 12조3500억원)쯤 될 것으로 추산했다.

탄소국경세의 목표는 이른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막아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탄소누출은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곳으로 거점을 옮기는 걸 말한다. 탄소누출을 통해 만든 저가제품은 EU 역내에서 환경비용을 부담하며 같은 제품을 생산한 기업에 피해를 주기 쉽다. 

④신재생에너지·연료효율 목표도 상향조정 

EU는 역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40%로 높이기로 했다. 당초 목표는 32%, 지난해 비중은 약 20%였다.

에너지효율 목표도 높여 잡았다. 당초 2030년까지 32.5%로 정한 상향 목표치를 36%로 높였다. 이를 위해 EU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최종 에너지 소비량을 9% 줄여야 한다. 2024~2030년 매년 1.5%를 줄여야 하는 셈으로, 목표치가 전(0.8%)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 

EU는 냉난방 시스템 개선이나 건물의 단열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⑤"정치적 자살행위"...佛 '노란조끼'의 악몽

'핏 포 55'가 입법절차를 통해 구속력을 얻으려면 유럽의회 과반수와 EU 27개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역내 국가 간 경제불균형과 업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최종 승인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관론자들은 '핏 포 55'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란조끼' 시위 같은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프랑스 정부는 2018년 말 노란조끼를 입고 나선 시민들의 시위에 밀려 유류세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시민들이 사고에 대비해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하는 노란 형광 조끼를 입고 나서면서 번진 노란조끼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프랑스 출신인 파스칼 캉팽 유럽의회 환경위원회 위원장은 '핏 포 55'에 담긴 내용 가운데 특히 ETS 개편안을 문제 삼았다. 그는 "탄소배출권시장을 난방, 연료로 확대한 건 실수"이자 "정치적 자살행위"라며 프랑스가 경험한 노란조끼 저항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EU는 '기후행동사회기금'(Climate Action Social Fund)을 통해 이번 규제 강화에 취약한 저소득 가계와 중소기업 등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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