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공포가 세계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 올랐다. 2017년 8월 이후 최고치다. 물가상승률이 2%대에 진입한 건 2019년 11월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달까지 1년간 6.8% 올랐다. 4개월 연속 상승해 2017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이 됐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생산자물가 상승은 주요국 수입물가를 띄어 올리는 요인이다.
중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9%로 지난해 9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12일(현지시간) 4월 물가지표가 발표된다. 월가에서는 3.6%를 예상한다. 이는 2011년 9월 이후, 10년 가까이 만에 최고치가 된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 3월에 2.6%로 이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 2%를 훌쩍 넘어섰다.
각국 정책당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부쩍 높아졌지만, 세계 경제 회복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시장의 경계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공포를 자극하는 지표들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반도체 부족사태처럼 수요 초과,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일련의 위험신호들이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제임스 매킨토시 월스트리트저널(WSJ) 시장 담당 수석 칼럼니스트도 장기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12일자 칼럼에서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투자 전략 5가지를 소개했다.
①황금률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투자처는 단연 금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 하락을 의미하는데, 금은 절대불변의 가치를 갖고 있어서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과거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급등한 나라에서도 금의 가치는 유지됐다.
매킨토시는 금의 인플레이션 헤지 능력은 역사적으로 이미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올해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 1월 1.4%에서 3월 2.6%로 2배 가까이 뛰는 동안 금값이 하락했다. 금값이 떨어진 건 세계 경제 회복세에 안전자산 수요가 약해진 탓으로 볼 수 있다.
주의할 건 평소에는 금이 주식보다 투자 성적이 크게 뒤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금은 그 자체로는 어떤 수익도 내주지 않는다. 금의 가치는 사실상 그것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종의 믿음이나 개념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금의 대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는 암호화폐 비트코인도 다를 바 없다.
②원자재
인플레이션은 물가(가격) 상승을 의미하는데, 물가가 오를 때 상승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게 바로 원자재(상품)다. 수요를 충족할 새로운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과거 인플레이션기에는 광산업체나 석유시추업체를 비롯한 원자재 생산업체들의 주가도 시장 수준보다 많이 올랐다. 구리와 원유 가격은 올 들어 각각 30% 이상, 목재 가격은 2배 가까이 올랐는데 주요 광산업체와 석유기업들의 주가도 시장 지수를 압도하는 상승세를 뽐냈다.
문제는 원자재 투자가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유조선이나 대규모 창고를 갖고 있지 않다면, 현물이 아닌 선물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특정 시점의 가격을 예상하고 일종의 도박을 해야 하는 셈인데,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은 상황이라면 추가 베팅 여지를 마련하기 어렵다.
③가격결정력이 약한 종목
수요가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라면 인플레이션 시기에 가격 인상을 단행하기 쉽다. 다만 가격결정력이 센 이런 회사들의 주가 수준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함께 높아지기 마련이다.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매킨토시는 인플레이션기에는 오히려 가격결정력이 약한 기업들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했다. 곳곳에서 가격인상이 잇따르면 평소에는 쉽게 가격을 인상하지 못하던 기업들이 덩달아 공격적인 가격인상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신, 케이블TV 등 경쟁이 치열한 업종의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주들이다.
벤 퍼넬 맨그룹 펀드매니저에 따르면 이런 기업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맞은 인플레이션기마다 첫 3분기 동안 시장을 압도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기가 끝나갈 때쯤에는 주가가 급락세로 돌아섰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④물가연동국채(TIPS)
TIPS는 투자 원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이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 고정수익을 보장하는 채권의 투자 매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TIPS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채권의 실질 가치를 보전해준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공포가 번지면서 TIPS 가격이 이미 너무 높은 수준에 있다는 점이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데, 최근 10년 만기 TIPS 금리는 -0.9% 수준에 있다.
⑤듀레이션이 짧은 자산
인플레이션기에는 투자금 회수기간(듀레이션)이 긴 자산이 타격을 받는다. 수익이 고정돼 있는 채권, 특히 장기채권은 더 취약하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의 금리는 팬데믹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1%를 갓 넘었다가 최근 2.3%까지 올랐다. 금리는 얼마 안 오른 듯하지만, 가격은 그 사이 20%가량 떨어졌다.
기술주를 비롯한 성장주도 인플레이션에 취약하다. 투자자들은 먼 미래의 성장성과 이에 따른 잠재 이익을 보고 성장주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주는 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마련이다. 반면 저평가된 가치주는 성장주에 비해 보상이 빠른 편이다. 인플레이션 위협이 커지면서 미국 증시에서는 올해 가치주가 성장주를 압도하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매킨토시는 투자자들이 직면한 최대 도전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동시에 연준의 금리인상 반격에도 견딜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짜는 일이지만, 연준이 막상 통화긴축에 나서면 거의 모든 베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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