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화폐가치 하락 경계하는 부자들...꺼리던 암호화폐 다시보기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올해 77세인 토머스 피터피는 자산 250억달러(약 29조7600억원)를 보유한 억만장자다. 월가에서는 '고속 거래의 아버지'(father of high speed tradin)로 통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런 그가 2017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전면광고를 하나 실었다. 비트코인 선물이 자본시장에 미칠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한창 고공행진하고 있었을 때다. 그해 비트코인 가격은 1400% 올랐는데, 이듬해 폭락했다.

암호화폐 비관론자였던 피터피는 요즘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암호화폐에 조예가 깊어진 그는 기존 화폐 가치가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고꾸라질 수 있는 만큼 개인 자산의 2~3%쯤은 암호화폐에 투자할 만하다는 입장이다.

토머스 피터피 인터랙티브브로커스그룹 회장/사진=인터랙티브브로커스그룹 웹사이트
토머스 피터피 인터랙티브브로커스그룹 회장/사진=인터랙티브브로커스그룹 웹사이트

피터피는 개인 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투자회사 인터랙티브브로커스그룹의 고객들도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을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들의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피터피는 암호화폐가 추가 투자수익을 올려줄 수도 있고, 반대로 그 가치가 제로(0)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암호화폐 투자는 필요하다는 게 지론이 됐다. 

블룸버그는 1일(현지시간) 피터피의 사례를 소개하며 암호화폐에 대한 억만장자들의 자세가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억만장자들이 기존 화폐에 대한 불신 속에 암호화폐 투자로 기대할 수 있는 잠재적인 거대 수익을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피터피, 달리오...비트코인 비관했던 갑부들의 '변심'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최근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일부 담아두고 있다고 밝혀 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게 달리오는 그동안 달러 체제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너무 커 유효한 가치저장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중앙은행들이 계속 돈을 찍어내면서 달러를 비롯한 현금이 '쓰레기'가 됐다며, 주식이나 금에 투자하길 권했던 그다.

또 다른 헤지펀드 전설인 억만장자 투자자 폴 튜더 존스도 지난해 비트코인 강세론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해 10월 CNBC와 한 회견에서 "비트코인을 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됐다"며 "비트코인은 아직 '1이닝'에 있을 뿐, 갈길이 멀다"고 말했다. 존스는 특히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투자처로 계속 몸값을 높일 것으로 봤다. 

전 세계 초고액자산가(UHNW)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들도 암호화폐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이 은행과 거래하는 패밀리오피스의 절반 가까이가 투자 포트폴리오에 암호화폐를 추가하는 데 관심을 나타났다.


◇금융권 주류로 뜬 암호화폐...뚝 떨어질 일은 없다?

블룸버그는 암호화폐시장이 혼전 속에서도 이미 상당 부분 금융권의 주류로 옮아갔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변곡점이 될 만한 이벤트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처음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시장에 데뷔했고, 올해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당국의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시장에 성공적으로 이름을 올린 것도 암호화폐 주류화의 중대 변곡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능 토큰) 투자 붐과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도 지난해 암호화폐 투자를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했다.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암호화폐 가격이 올해 달나라까지 치솟지는 않더라도, 한계선 아래로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비트코인 가격 추이(달러)/자료=FRED, 코인베이스
비트코인 가격 추이(달러)/자료=FRED, 코인베이스

대표적인 암호화폐 강세론자인 마이클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 설립자는 시장의 거품 때문에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적으로 횡보하다 하락할 수 있지만, 투자 밀물 덕분에 4만2000달러를 밑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비트코인의 지난해 마감가는 약 4만6300달러다.

제스 파월 크라켄 최고경영자(CEO)도 비트코인 가격이 4만달러 밑으로 얼마라도 떨어지면 매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스타 펀드매니저 캐시 우드 아크(ARK)인베스트먼트 CEO는 비트코인 가격이 50만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핀, 다이먼...회의론에 담아둔 가능성

블룸버그는 월가 전문가들과 억만장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암호화폐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지만, 실용주의 관점도 있어 완전히 비관적인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헤지펀드 시타델의 켄 그리핀 CEO는 최근 암호화폐 투자 열기를 달러에 대한 '지하디스트 콜'(jihadist call)이라고 비꼬았다. 이슬람성전주의자들의 극단적인 투쟁처럼 달러에 대한 강한 저항이 암호화폐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규제가 더 강화되면 시타델도 암호화폐 거래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주장해온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해 10월에도 비트코인은 가치가 없다고 일갈했다. 주목할 건 JP모건이 그사이 암호화폐 관련 인력 확충에 열심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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