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공무원 도박 빚 갚기 위해 금품 요구
대우건설 거부했으나, 금품 요구 지속돼
경쟁사가 먼저 제공, 어쩔 수 없이 건네
지난해 여름 싱가포르 건설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싱가포르 지하철 뇌물스캔들 뒤에는 도박에 빠진 담당 공무원의 집요한 금품 요구가 있었다. 도박 빚에 시달리다 평소 친분이 있던 건설사 관계자를 압박해 돈을 뜯어낸 것이다. 계속 거절하던 우리나라 건설사 관계자는 경쟁사가 먼저 금품을 건네자 어쩔 수 없이 요구에 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 매체 더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7일 싱가포르 법원에서 헨리 푸융티 전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 부국장의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심리가 진행됐다. 이날 헨리 푸 전 부국장에 금품을 전달한 대우건설 직원 김 모씨와 노 모씨가 혐의를 인정했다.
대우건설 직원이 LTA 부국장에 금품을 건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렇다. 2014년 4월 대우건설이 싱가포르 지하철 톰슨라인 스티븐스역 구간 건설공사를 수주하면서 싱가포르에 상주하게 된 두 사람은 2015년부터 자연스럽게 공사 담당자인 헨리 푸와 자주 만나게 됐다.
그러다 2018년 중반 헨리 푸가 갑자기 노 씨에게 재정적 문제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많은 도박 빚에 시달리던 푸 전 부국장이 금품을 요구한 것이다. 노 씨는 우선 그의 요구를 거부하고, 상사인 김 씨에게 보고했다. 현장소장이던 김 씨는 회사의 금품 제공 금지 규정과 싱가포르 뇌물금지법 위반을 우려해 헨리 푸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헨리 푸는 집요했다. 김 씨와 노씨는 대우건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까지 거론하며 금품 제공을 거부했지만, 헨리 푸의 요구는 계속됐다. 결국, 경쟁 업체인 중국 건설업체가 먼저 돈을 건넸다. 싱가포르에서 계속 사업을 해야 하는 대우건설 측도 헨리 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2018년 12월 6일 노 씨는 네 번에 걸쳐 두 개의 은행계좌로 헨리 푸에 3만싱가포르달러(약 2500만원)를 이체했다. 하나는 헨리 푸 본인의 계좌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아내와 공동으로 관리하던 계좌였다. 푸는 갚겠다고 했지만,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2만싱가포르달러(약 1700만원)를 더 요구했다.
이렇게 헨리 푸가 대우건설을 포함해 계약업체와 하청업체로부터 뜯어낸 금액은 124만싱가포르달러(약 10억4000만원). 그는 23개 부패 혐의와 13개 부정행위 혐의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부패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10만싱가포르달러(약 8400만원) 벌금이나 징역 최대 5년, 또는 두 가지 형 모두에 처할 수 있다.
김 씨와 노 씨에 대한 최종 판결은 오는 18일 선고된다. 부정부패 범죄가 정부나 공공기관의 계약과 관련되면, 처벌 수위가 징역 최대 7년으로 늘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