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국제금융시장 올해 이슈와 새해 전망④/
탈탄소 바람에 천연가스·비철금속 등 가격 급등...내년 최대 리스크 '인플레이션' 우려 점증
올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주목한 대형 이벤트 가운데 하나가 지난달 영국 글래스고에서 막을 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할 보다 구체적인 행동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마감시한을 하루 넘기기까지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가까스로 채택한 '글래스고 기후 조약'(Glasgow Climate Pact)은 화석연료, 특히 석탄 퇴출 결의에 실패해 '소문난 잔치'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1.5도 사수'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한 것은 그나마 성과로 꼽힌다. 2015년 채택한 파리협정은 2100년까지 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한참 낮게, 이상적으로는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기후재앙을 막으려면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경고에 비하면 너무 느슨한 목표라는 지적이 많았다. 글래스고 기후 조약은 파리협정 목표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1.5도 사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결의를 담았다.
어찌됐든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와 세계 곳곳에서 잇따른 기상이변 속에 열린 COP26은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새삼 일깨우기 충분했다. 덕분에 최근 한창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붐은 더 큰 탄력을 받았다. 투자액이 이미 지난해의 사상 최대치를 넘어섰다.
ESG 투자열기는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는 동력이자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탄소 배출을 급격히 줄이는 탈탄소 친환경 전환이 의도하지 않은 골칫거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른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다.
그린플레이션은 세계적인 친환경 전환, 즉 '녹화'(greenification)에 따른 급격한 물가상승을 의미한다. 'en(environment·환경)-flation'이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내년에 직면할 최대 리스크 가운데 하나로 인플레이션을 꼽는다. 그린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더 자극하는 것은 물론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제동을 걸어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유럽 천연가스값 급등...'탈탄소' 연쇄 파장
본격적인 겨울을 맞은 유럽은 최근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해 애를 태우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기준물인 네덜란드 TTF거래소 선물가격(3개월물)은 지난 21일 메가와트시당 180유로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이 LNG(액화천연가스) 공급을 늘리면서 지난 주말 110유로 선으로 떨어졌지만, 이조차 연초보다 6배가량 오른 것이다.
유럽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게 된 건 러시아가 최근 공급량을 줄였기 때문인데, 그보다 유럽이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줄이고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 소비를 늘린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뛰면서 비철금속 가격도 덩달아 고공행진하고 있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의 알루미늄 선물(3개월물) 가격은 최근 톤당 2800달러 선으로 지난해 말보다 40% 뛰었다. 지난 10월 중순에는 한때 3200달러 선까지 올라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리와 아연 가격도 지난해 말에 비해 각각 20%, 30%가량 상승했다.
주요 발전원인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전기 가격이 오른다. 비철금속은 생산과정에서 전력 소모가 커 생산비용 부담이 커진다. 유럽 주요 업체들이 일부 제련소 가동을 중단했을 정도다. 비철금속 가격이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탈탄소 바람 속에 수요가 늘고 있는 전기차도 비철금속 가격을 띄어 올리고 있다. 전기차는 차체를 가볍게 하기 위해 알루미늄을 많이 쓴다. 모터 등 전기차에 쓰는 구리도 내연기관차의 4배에 이른다. 풍력발전설비도 모터, 배선 등에 대량의 구리를 쓴다.
구리와 알루미늄 등의 수요가 얼마나 큰지, 또한 공급이 얼마나 빠듯한지는 LME 재고를 통해 알 수 있다. LME에 따르면 지난 23일 현재 구리, 알루미늄 등 주요 6개 비철금속 재고는 약 141만톤으로 팬데믹 사태 충격으로 재고가 가장 많이 쌓였던 지난 3월에 비해 48% 줄었다. 팬데믹 사태가 불거지기 전인 2019년 말보다도 25% 적은 것이다.
에너지와 비철금속 가격 상승은 집세와 내구재 가격 또한 밀어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인다.
◇탈탄소발 인플레이션 해소 어려운 이유
사카가미 료타 일본 JP모건 증권 수석 주식 투자전략가는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탈탄소 흐름)이 장기적인 고인플레이션을 일으킬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파리협정 채택 이후 본격화한 탈탄소 흐름이 2020년 이후 '화석연료 개발·투자 축소→수급 압박에 따른 가격 급등→비철금속 등 생산비 상승'이라는 구도로 완성돼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기가 부쩍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일본 노무라 증권의 오코시 타츠후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충분할지는 불투명하지만, 그렇다고 재생에너지 부족을 천연가스를 개발해 메우기도 여의치 않다고 지적했다. 천연가스 역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탈탄소 흐름에 밀려 좌초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예로 미국 뉴욕시는 최근 새로 짓는 빌딩들의 천연가스 사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노르웨이 에너지 리서치정보업체 라이스타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천연가스 개발투자액은 3000억달러가 넘을 전망인데, 이는 2014년 정점에 비해 26% 줄어든 것이다.
◇제2차 오일쇼크, 비슷하지만 다르다
과거에도 세계는 자원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이란혁명 당시 이란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면서 발생한 1980년 전후의 제2차 오일쇼크가 대표적이다. 당시 원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980년 한때 전년대비 14%대까지 올랐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20%까지 높여야 했다. 이 바람에 미국 경제는 이중침체(더블딥)에 빠졌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달 6.8%로 1982년 이후 최고치까지 올라섰다. 연준은 내년 세 차례 등 2024년까지 8번의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다른 주요국과 신흥국도 인플레이션에 맞서 금리인상을 벼르고 있다. 이에 따라 과도한 금리인상 속도전이 자칫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 제2차 오일쇼크 때와 상황은 다르지만, 분위기는 비슷한 셈이다.
다만 최근 불거진 인플레이션은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통화정책만으로 해소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더욱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탈탄소 흐름에 역행해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기도 어렵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원유 소비국은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중국은 이에 더해 비철금속 비축분까지 푸는 개입으로 수급을 맞추려고 하지만, 물량이 제한돼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경제가 탈탄소 실현과 인플레이션 통제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난제에 직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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