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통한 입소문이 개인 투자 결정 주도
'월스트리트베츠'서 '크립토커런시'로 무게 이동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2019년에 낸 '내러티브 경제학'(Narrative Economics)이라는 책에서 경제가 사실(fact)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내러티브, 즉 서사(이야기)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금융시장에서도 이성보다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입소문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도 트위터나 레딧 같은 소셜미디어에 모인 개인투자자들 사이의 이야기로 들썩거릴 때가 많다.
한 예로 미국 뉴욕증시에는 연초 '게임스톱' 광풍이 휘몰아쳤다. 시장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비디오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톱의 주가가 1월에만 4500% 넘게 폭등했다.
레딧의 주식 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r/WallStreetBets)에 모인 개인투자자들이 게임스톱 매수세를 주도했다. 게임스톱을 공매도 표적으로 삼은 헤지펀드들에 맞서자는 데 공감한 이들이다. '얘깃거리'가 되는 투자였던 셈이다. 레딧의 최고경영자(CEO)가 의회 청문회에 불려 갔을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월스트리트베츠를 통해 게임스톱 매수에 동참한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 엔지니어 마이클 프롤리는 지난 1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일반적인 월스트리트베츠 이용자는 부자들을 경멸한다"며 "우리가 부자들의 부를 원상태로 되돌리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훨씬 더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정보 플랫폼업체 퀴버퀀트에 따르면 월스트리트베츠에는 당시 하루 43만개가 넘는 글이 실렸다.
◇'월스트리트베츠' 압도한 '크립토커런시'
주목할 건 최근에는 월스트리트베츠의 게시글이 1월 말 정점에 비해 97%나 줄었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의 관심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로 쏠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FT는 이달에는 레딧의 간판 암호화폐 토론방인 '크립토커런시'(r/Cryptocurrency)가 하루 게시글 수로 월스트리트베츠를 앞섰다고 25일 전했다.
퀴버퀀트에 따르면 지난 21일 하루 동안 크립토커런시에 올라온 글은 약 3만6000개로, 이달 들어서만 82% 증가했다. 반면 월스트리트베츠의 글은 하루 1만3000개로 같은 기간 42% 줄었다.
FT는 레딧에서 크립토커런시가 급부상하고 월스트리트베츠가 추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월스트리트베츠가 암호화폐 관련 토론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게임스톱 광풍이 시들해진 것도 한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게임스톱 주가는 지난 1월 말 역대 최고가(장중 483달러)를 찍은 뒤 60% 넘게 떨어졌다.
제임스 카다츠케 퀴버퀀트 설립자는 "크립토커런시에서 논의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단순히 로빈후드(공짜 주식거래앱) 계정의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러티브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매우 크고, 더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덕분에 암호화폐시장의 이야기는 더 풍성해졌다. 그의 변덕에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요동치고 있어서다. 머스크가 지난 12일 환경문제를 이유로 테슬라 차량 구매시 비트코인 결제를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크립토커런시에서는 머스크의 이름이 한때 2000번 넘게 거론됐다.
머스크가 촉발한 투매는 6만달러에 가까웠던 비트코인 가격을 5만달러 밑으로 끌어내렸다. 지난 19일에는 한때 3만200달러 선까지 밀렸다. 당시 크립토커런시에는 역대 최대인 하루 약 5만9000개의 글이 실렸다.
브라이언 루시 아일랜드 트리니티 경영대학원 교수는 개인들이 소셜미디어의 주도 아래 마치 게임을 하듯 거래를 하는 건 암호화폐시장도 증시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흥분되는 일을 추구하는 이들은 위험과 보상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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