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e is a gun. Politics, is knowing when to pull the trigger."
(금융은 총이다.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다.)
영화 '대부 3'에 나오는 대사다. 이탈리아 정재계를 좌지우지 하는 돈 루케니가 마피아 집안의 젊은 후계자 빈센트 만치니에게 해주는 조언이다.
정경유착의 자본주의 생리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는 명언을 찾기 어렵다.
요즘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특검 정국의 칼끝이 겨누는 종착점이 또 하나의 정경유착은 아닌지 벌써부터 재계 전반에 걱정이 짙어지고 있다. 마피아 영화에서나 나오는 정경유착의 모습이 현실세계에서 재현될 경우 그같은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권이 교체되면서 '노랑봉투법' 등 노동계의 목소리가 커지는만큼 위축되는 경영계의 입장에서는 만약 정경유착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면 명분싸움에서 밀리는 형국을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특검이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김 여사의 집사로 불리는 김예성씨가 2013년 설립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렌터카 업체 'IMS모빌리티'이다. IMS모빌리티는 2023년 카카오모빌리티(30억 원)와 효성의 4개 계열사(35억 원) 등으로부터 총 184억 원을 투자받았는데 특검은 이들 대기업들이 투자를 한 것은 김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청탁하기 위한 '보험성 투자'였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집사게이트에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이름이 거론되면서 재현되는 '정경유착' 의혹들
특검이 주목하는 IMS모빌리티에 대한 184억 원 규모의 투자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투자는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가 조성한 오아시스제3호제이디신기술투자조합(오아시스3호펀드)을 통해 이뤄졌는데 HS효성은 후순위 투자자로서, 손실 발생 시 선순위 투자자의 손실을 먼저 떠안는 구조에 동의한 계약을 체결한 점이 석연치않다.
HS효성은 더클래스효성, 더프리미엄효성, 신성자동차, 효성도요타 등 자동차 딜러 계열사 4곳을 통해 투자에 참여했는데 특검은 이 투자 결정이 각 계열사의 독립 판단인지, 그룹 차원의 일괄 승인인지를 조사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특검은 HS효성의 투자 시점에 주목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조현상 부회장의 계열사 신고 누락을 조사하던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만들기 위한 억지투자가 아니었느냐는 의심인 것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횡령, 증거은닉교사 등의 혐의를 받는 IMS모빌리티와 투자 운용사 대표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이때문인지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최근 '집사' 김예성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당장 김 여사 연루 정황을 부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어찌 보면 효성의 입장에서는 잠시 한숨 돌릴수 있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집권 여당이 항상 '더 센 특검'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법조계 내부의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수사상황이 생중계되는 그런 사태도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이름이 거론되면서 '정경유착'이라는 꼬리표가 다시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조 부회장이 독립경영 1년만에 특검사무실에 불려가는 모습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범효성 그룹의 고질적인 '오너리스크'가 이미 어느 정도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형제의 난' 때 조석래 선대 회장의 둘째 아들 조현문 전 부사장은 형과 부친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며 법적 분쟁을 벌였고, 유산 상속 문제에 대해 유언장 형식과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건부 동의를 밝힌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이 이미 지분 상속을 완료한 상황이지만 갈등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 7월, 형인 조현준 회장과 주요 효성 임원진을 상대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가 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을 진행하면서 이른바 '형제의 난'이 나라 안팎의 관심을 크게 모았다. 이후 형제간에 화해가 이뤄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검찰은 지난 22년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역고소당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을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최근에도 공판은 이어지고 있다. 내용을 보면 조 전 부사장이 2013년 퇴사 이후, 보도자료 배포 요구 및 주식 고가 매수 요구 등을 통해 형을 협박했다는 강요미수 혐의다.
그룹 전체를 뒤흔들었던 '형제의 난'이 완전히 정리된 상황은 아닌 것이다.
효성은 지난해 조석래 명예회장이 타계하면서 조현준 회장이 이끄는 기존 지주회사 ㈜효성이 효성티앤씨·효성중공업·효성화학·효성티엔에스 등을 거느리고 조현상 부회장은 분할된 HS효성그룹 내 HS효성첨단소재·HS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등을 맡는 형태로 계열이 분리된 상태다.
이번에 집사게이트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조현상 부회장은 HS효성의 독립 이후 모빌리티 계열사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해왔으며, 효성첨단소재를 통해 탄소섬유·바이오소재 등 국가 전략산업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IMS모빌리티 투자 건이 '대가성 의혹'으로 번지며 특검 수사 대상이 되었고, 이는 HS효성의 신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법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결코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효성의 오너리스크 → 산업 리스크 → 국가 리스크로 이어지는 정경유착의 연결고리 끝내야
효성그룹은 이미 선대 회장 시절에도 경영투명성과 정경유착과 관련해서 여러 차례 시장의 의구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조석래 선대 회장은 1999년 전경련 부회장 자격으로 "재계는 정경유착, 금품 제공, 담합행위 등으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자기반성과 투명성 제고를 촉구한바 있다.
하지만 조 회장 본인이 2013년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되었고,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조 회장이 건강 상의 이유로 법정구속을 면하자 일각에서 정권의 특혜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었다.
효성그룹은 한국 산업계에서 기술 혁신과 글로벌 확장을 이끌어온 대표적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스캔들과 '형제의 난'이 남긴 기억들 때문에 여전히 기업이미지에서 상처를 받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조현상 부회장이 '김건희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르자 효성의 지배구조와 경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효성그룹은 인적분할 이후에도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계열사의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40~47% 수준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이사회 독립성, 감사위원회 실질화, 주주권 보호 장치 등이 미흡하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오너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소액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주가 하락, 배당 불확실성, 정보 비대칭 등으로 인해 투자자 신뢰가 무너질 수 있으며, 이는 자본시장 전체의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HS효성첨단소재의 경우 탄소섬유, 아라미드, 2차전지 소재 등 국가 전략산업을 담당하는 핵심 기업이다. 글로벌 협력과 기술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최근 실적 부진과 부채비율 상승, 경쟁 심화에 더해 사법 리스크까지 겹친다면 산업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효성은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니다. 국가 산업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으로서, 정경유착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너리스크를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지 않는다면, 효성의 기술력과 산업적 기여는 정치의 방아쇠 아래 무력화될 수 있다.
"정경유착이 효성의 최종무기라면, 그 무기는 결국 자신을 겨누게 될 것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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