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의 기존 생존 경험을 받아들여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기존 기업 역시 스타트업들의 역동적인 도전 전략을 통해 재도약하는 것은 물론 지속 성장의 DNA를 확보해 시장과 기술에서 시너지는 창출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K-오픈 이노베이션’이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관련 분야 전문가인 김준학 박사의 컬럼을 통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기업의 혁신과 생존 방안을 조망해 본다._<편집자 주>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관련 보도가 10여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전국 일간지에서는 관련 기사가 무려 7000여건에 달한다. 이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기업 혁신의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한 관심 증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과연 얼마나 성숙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현재 국내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창업진흥원이나 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정부 지원기관, 스타트업 성장을 돕는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와 벤처캐피털(VC) 그리고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 주체인 스타트업과 협업을 모색하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이 대표적이다.
한국무역협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연간 오픈 이노베이션 관련 프로그램은 2018년 18건에서 2023년 186건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의 90%가 사업실증(PoC), 멘토링, 사업협력에 집중되어 있으며, R&D 기반 협력은 10%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단기적인 협업 중심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근본적인 기술 혁신을 위한 장기적 협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국내 오픈 이노베이션의 또 다른 특징은 공공 기관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정부 및 공공기관이 매개 역할을 하는 경우, 협업의 주체인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자율성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이 지속적으로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이는 참여 기업들의 자발성이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단기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내부 예산 부족과 부서 간 비협조 등의 문제도 협업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협업 기업의 조직 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양측이 만나 성대하게 시작하지만 초라한 성과를 머무르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
결국,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기업과 스타트업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일까? 정답은 기업의 최고경영진(CEO)이다.
기업의 수명이 과거보다 급격히 단축되고 있는 지금, 오픈 이노베이션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이 '현업 부서의 자율'에만 맡겨진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CEO의 강한 의지와 더불어 사내 오픈 이노베이션 조직에 대한 권한 부여(empowerment)가 필수적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한킴벌리를 들 수 있다.
유한킴벌리는 스타트업과의 협업으로 지속가능한 제품개발에 주력하여 사탕수수 바이오매스를 적용한 기저귀, 미세플라스틱이 없는 물티슈와 같은 친환경 혁신제품을 개발하며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단순히 단기적 협업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업이 단독으로 시장을 헤쳐 나가는 시대는 끝났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외부 협력이 필수적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기업의 핵심 성장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기업 경영진이 이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조직 전체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협업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다.
혁신을 위한 협업을 강화하고, 보다 전략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_ 김준학 / 창업학 박사. 벤처창업학회, 사회적기업학회 이사. KT에서 22년간 재직 후 현재 '오픈이노베이션랩'을 설립해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등 혁신생태계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경영자문과 관련 특강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정부기관 지원사업의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K-오픈 이노베이션 101> 등이 있다. ceo@opeinnovationlab.kr
비즈니스플러스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