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되면서, 영풍의 의결권 행사를 막기 위한 고려아연의 '블록딜'이 긴박하게 이뤄졌다.
고려아연이 23일 임시 주총을 앞두고 영풍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고려아연의 최씨 일가가 영풍 지분 일부를 블록딜로 매각한 것이다.
이번 블록딜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상호 10%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서로 각 회사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돼 있는 '상호주 제한'을 활용하기 위한 카드로 단행됐다.
구체적으로는 장외 거래를 통해 영풍정밀을 포함, 유중근 씨, 최창규 영품정밀 회장, 최창근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정운 씨 등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 호주법인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영풍 지분 일부를 블록딜로 매각했다.
그럼으로써 영풍과 고려아연, SMC간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해 영풍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발을 묶었다.
경영권 다툼의 당사자인 영풍·MBK 연합은 즉각 반발했다. 영풍·MBK 연합은 24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고려아연 최 회장과 박기덕 대표이사를 비롯해 신규 순환출자 형성에 가담한 관계자들을 공정거래법 위반·배임 등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기다렸다는 듯 대타협과 시너지 창출 등 '윈·윈'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고려아연은 같은날 기자회견에서 이사회를 MBK에 전향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2022년 제시한 신재생 에너지·그린수소, 폐기물 리사이클링, 2차전지 소재사업 등 미래 신사업 프로젝트인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통해 사모펀드의 금융자본 경쟁력과 고려아연의 산업자본 경쟁력이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서 고려아연 측의 구원투수 역할을 한 블록딜은 무엇이고 왜 중요할까.
◇블록딜이란?
블록딜(장외대량매매)은 증권시장에서 기관 또는 큰손들의 대량매매를 가리킨다.
시장에 주식이 대량으로 나오면 시장가격에 영향을 줘서 팔고자 하는 가격에 팔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에 따라 주식을 대량보유한 매도자가 사전에 자신의 매도물량을 인수할 수 있는 매수자를 구해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장 시작 전이나 장 종료 후 시간외매매로 전일종가 또는 당일종가로 주식을 넘기는 매매를 말한다.
이로써 장중 주가 급락은 피할 수 있으나 다음날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는 지분을 대량 매입하기로 미리 약속하는 대신에, 당일 종가보다 얼마간 할인된 가격(일반적으로 5~8% 정도)에 주식을 받아간다.
◇블록딜이 중요한 이유
블록딜은 대량매매가 이뤄질 때 주가가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등 급격히 변동하는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기업 주식을 대량 매각하려는 주체와 이를 사들이려는 투자자간 유동성을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기관투자자나 큰손들은 포트폴리오 조정이나 전략적 거래 시 블록딜을 자주 사용한다. 이들은 블록딜을 통해 지분 정리, 경영권 확보, 전략적 파트너십 제휴 등을 수행한다.
가령 기업의 대주주는 경영권 매각이나 현금화 목적으로 보유 지분을 대량매도할 때 블록딜로 거래한다.
또한 기관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해 대량의 주식을 빠르게 사고팔 때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다.
기업 인수합병(M&A) 시 블록딜이 경영권 확보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한편 일반투자자들에게 주식의 대량매도 소식은 부정적인 시그널이 되는데, 블록딜은 이러한 정보를 미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블록딜은 시장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거래를 가능케하므로 자본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블록딜 전 공매도의 문제
블록딜이 문제시되는 경우는 증권업계의 관행적인 '블록딜 전 공매도'이 발생할 때다.
증권업계는 그간 관행적으로 블록딜로 지분 인수하기 전 미리 공매도를 해왔다.
블록딜 전에 해당 종목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공매도를 하는 것이므로 투자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다음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먼저 대규모 블록딜 거래 정보를 미리 알고 수익을 취하는 정보비대칭 문제가 떠오른다.
또한 블록딜 전 대량 공매도로 해당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하면서 일반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히는 시장 왜곡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2016년 이후 블록딜 전 공매도에 대해 불법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블록딜 이후 일반적으로 해당 회사 주가가 급락하므로 헤지(위험회피) 차원에서 공매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국과 법조계에서는 블록딜 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공매도로 이어질 경우 내부자 거래 혐의가 제기될 수 있으므로, 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데이터를 정밀분석한다는 입장이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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