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경제적 가치 있나?" '비용효용' 논란
"온난화 비용 생각보다 커" 새 모델 분석 주목
지난달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6)가 개막했다. 파국적인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 아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전 세계 190여개국이 2015년 채택한 파리협정은 산업혁명 이후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한참 낮게, 이상적으로는 1.5도로 제한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목표를 실현하려면 2050년께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는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해야 한다는 게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낸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넷제로를 달성하는 게 경제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도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까지 다수 경제모델 분석은 기후변화가 경제성장에 타격을 주는 건 분명하지만, 지구 기온 상승폭을 2도 아래로 제한하거나 넷제로를 달성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기후경제학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국 예일대 교수의 경제모델도 마찬가지다.
◇'넷제로'는 불가능하다?
기후경제학의 선구자인 노드하우스 교수는 기후변화와 경제의 상호작용을 가늠하는 'DICE'(동태통합기후-경제) 모델을 만든 이로 유명하다.
그는 1992년 DICE를 통해 지구온난화에 의한 피해가 장래 국내총생산(GDP)의 1.3%,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t당 5달러 미만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탄소배출 감축폭은 9%에 불과하다고 계산했다.
노드하우스는 DICE를 계속 개량해 2017년 새로운 결과를 내놨다. 계산에 반영된 과학적 요소는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인구와 GDP 등 경제적 요소가 크게 변했다. 탄소 농도 역시 25년 새 훨씬 높아졌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t당 36달러로 7배 늘었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노드하우스는 당시 한 강연에서 "(기후변화가) 우리 지구를 위협하고 있으며, 우리의 미래를 뒤덮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한 넷제로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넷제로를 위한 비용은 GDP의 3.5%인데, 지구 평균 기온이 3도 상승하는 데 따른 피해는 GDP의 2%밖에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노드하우스는 "넷제로는 현재 기술로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DICE를 크게 손볼 계획인데, 지구 기온 상승폭을 2도 이내로 억제하는 건 여전히 불가능하다고 본다. 노드하우스는 "지구 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어선 뒤에야 이 문제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신속하게 공동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존 모델들의 '오류'
최근 일부 경제학자들은 노드하우스와 같은 이들이 기후모델에서 사용한 자료는 너무 오래 됐고, 미래 웰빙의 가치를 너무 낮게 추정하고 있어 기후재앙에 대비한 보험을 원하는 사회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미래 달러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데 쓰인 할인율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있다. 노드하우스는 인플레이션 조정 후 4~5%의 할인율을 계산에 적용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최근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조정 후 금리가 0% 근처나 마이너스인 데다 개발도상국들이 기후변화로 더 가난해질 수 있는 만큼 할인율을 더 낮춰야 한다고 본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탄소배출에 따른 온난화 비용이 기존에 생각한 것보다 크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넷제로를 달성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까지 입증하진 못했지만, 넷제로의 비용효율을 높일 가능성이 전보다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 예로 미국 싱크탱크인 '미래를 위한 자원'(RFF)는 최신 연구에서 "직관적으로 지금 관점에서 보면, 미래의 비용 100달러는 그때까지 성장이 정체된 사회보다 극적으로 성장한 사회에서 가치가 더 작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RFF는 기존과 다른 기후모델과 GDP, 인구 전망을 반영해 번영한 사회보다 정체된 사회가 당하는 100달러짜리 피해의 타격이 더 커지도록 조정했다. 이 결과,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할인율 3%를 적용할 때 t당 61달러, 2%일 때는 168달러라는 계산이 나왔다. 노드하우스가 낸 수치보다 훨씬 높다.
DICE가 1990년대, 2000년대 초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생물다양성 상실, 불활실성 확대 등 비시장 비용을 명확하게 모델에 반영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탄소 비용 계산을 이끈 마이클 그린스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노드하우스의 예측은 "경험적 증거에 근거하지 않았고, 기후변화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차이인 이질성을 포착하거나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기후변화의 영향에 관한 438건의 실증연구가 발표됐지만, 어느 것 하나 주요 기후모델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린스톤이 공동 설립한 기후영향연구소(CIL)는 기존 기후모델들이 기후변화의 양대 피해 요소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두 요소는 극단적인 더위에 따른 조기 사망과 노동생산성 저하다.
CIL은 사람들이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에 제방을 쌓는 식으로 대응하고 적응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기존 모델보다 피해를 적게 추정했다. 다만 대응방식은 지역별로 다를 것으로 봤다. 노르웨이에서는 온난화로 겨울 난방비가 줄어드는 반면 나이지리아에서는 에어컨 사용 증가로 전기 소비가 20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많은 개도국에서 사람들은 에어컨을 쓸 여유가 없어 어려운 환경을 견뎌야 하는 게 현실이다. CIL은 세계를 2만5000개 지역으로 나눠 DICE 같은 기존 기후모델이 간과한 지역별 리스크를 명확히 했다.
CIL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t당 100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할인율은 2%가 적용됐다. CIL은 또 사람들이 화재 등 재해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기후재앙의 작은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비용을 치르려 할 것이라며, 보험 부담까지 감안하면 탄소 비용이 t당 20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봤다.
◇넷제로 '비용효용' 커졌지만...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 커지면 배출규제 강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 RFF와 CIL의 새로운 셈법이 넷제로 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가 2030년까지 t당 평균 75달러의 탄소세를 도입하면 지구 온도 상승폭을 2도 이내로 제한할 수 있다고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넷제로 달성 비용으로 t당 140달러를 제시했다. 둘 다 기존 기후모델들이 도출한 비용을 훌쩍 초과하기 때문에 정당화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넷제로의 가성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경제적 예측은 과학적 평가에 비해 주관적이기 쉽다.
한 예로 할인율은 미래 세대의 가치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모린 크로퍼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는 "많은 이들이 그건 도덕적으로 판단할 일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련의 논의가 곧 혁신적인 정책을 가져올 것 같지도 않다. 탄소 배출에 사회적 비용 수준의 비용을 부과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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