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미국 댈러스 포트워스에 사는 로버트 길모어(69)는 지난 1월 말부터 데이트레이더로 나섰다. 이후 한때는 20만달러(약 2억3000만원)가량의 신용거래대출을 이용해 주식과 섹터펀드(특정 업종에 투자하는 펀드), 상장지수펀드(ETF)를 160종목까지 보유했다. 

그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신용거래 의존도를 낮추기로 하고, 보유 종목을 96개로 줄였지만 미련을 버리기 어려웠다.

길모어는 지난달 30일 화상회의 플랫폼 업체인 줌커뮤니케이션 주가가 급락한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다음날 주가가 크게 오를테니, 싸게 사들여 대박을 내자'고 생각했다. 줌 주가는 다음날 17% 추락했다. 

낙심한 길모어는 욕조에 들어앉아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 맹세는 그날밤 깨졌다. 미국 은행 웰스파고 주가가 추락한 사실을 확인한 그는 이 은행 주식을 사들였는데, 이튿날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주가가 5% 더 떨어진 것이다.

은퇴 생활 중인 길모어는 회계사 출신답게 매일 거래 기록을 모두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고 있다. 데이트레이더로서 거래를 시작한 이후 벌어들인 수익은 약 1만8000달러. 

길모어는 이 자금을 인덱스펀드에 맡겼다면, 지금쯤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투자 방식을 의심하지만, 이미 생활의 일부가 돼 버렸다고 덧붙였다.

S&P500지수 추이/자료=FRED
S&P500지수 추이/자료=FRED

◇위험감수 없는 투자는 없지만...

제이슨 츠바이크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니스트는 최근 쓴 글에서 길모어의 사례를 들어 미국 증시 강세장의 이면을 꼬집었다. 투자자들이 강세장에 취해 '위험감수'(risk taking)와 '위험추구'(risk seeking)를 구별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에서 위험은 감수하되, 일부러 위험을 추구하진 말라고 조언한다.

츠바이크는 강세장은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주가가 한없이 오르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수익을 앗아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강세장에 뛰어든 길모어 같은 투자자들은 분위기에 취해 위험을 추구하며, 필요 이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투자할 수는 없다. 투자금의 100%를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 국채나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은행 계좌에 맡겨도 위험이 전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금리 수준이 워낙 낮기 때문에 소득이 구매력을 떠받치지 못하게 될 현실적인 위험이 있는데,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실 가능성이 높다.

츠바이크는 이런 위험을 '본의 아닌 위험'(involuntary risk)이라고 했다. 투자자들에게 불가피한 위험이다. 그러나 장기 강세장은 투자자들을 자극해 '자발적인 위험'(voluntary risk)을 추구하고, 감수하도록 부추겼다. 츠바이크는 투자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베팅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투자자들이 위험에 뛰어든 이유

츠바이크는 길모어의 사례는 별로 놀랄 일이 아니라고 했다. 미국 증시 대표지수인 S&P500이 올 들어 54차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장이 다시는 내려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줬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리스크가 낮다고 느끼면 더 많은 위험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저금리 정책은 시장의 위험을 낮춰 투자자들을 더 위험한 행동을 하도록 몰아붙였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과거에는 현금으로 약 5%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은행예금 이자 등이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구매력 저하 외에 다른 위험은 없었다. 위험감수를 정당화하려면 수익이 적어도 5%는 돼야 했다. 따라서 위험을 추구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고, 위험을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모든 게 바뀌었다. 연준과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 심지어 마이너스(-)로 낮추면서다. 돈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비용이 들게 됐다.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도 위험추구를 부추겼다.

팬데믹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S&P500지수는 지난해 3월 말 저점까지 5주 동안 34% 떨어졌다. 모두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지수는 불과 126거래일 뒤 다시 신고점을 기록했다. 눈부신 회복세는 투자자들에게 지금의 시장은 더 안전하다는 확신을 줬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금리) 추이/자료=FRED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금리) 추이/자료=FRED

◇불필요한 위험 아닌가...자문해봐야 할 것

츠바이크는 이쯤에서 투자자들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S&P500지수는 올 들어 20% 넘게 올랐지만, 채권은 제자리걸음이다. 주식(위험)과 채권(안전)을 반반으로 하는 보수적인 운용을 목표로 하면서도, 실제로는 강세장이 한창인 주식에 더 무게가 실렸다면 가외의 리스크를 짊어진 셈이라고 츠바이크는 지적했다.

본래 운용목표로 돌아가려면 주식을 매각하거나 채권을 매수하거나, 둘 다를 해야 한다.

츠바이크는 '이는 내가 감수해야 할 위험인지'도 자문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투자금의 10배를 버는 걸 상상하고,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도 생각해보라고 주문했다.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츠바이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거래를 할 가치가 있는지도 자문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감수하고 있는 위험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도 자문해보자고 했다. 자신과 반대 거래를 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이고, 이들이 왜 기꺼이 자신에게 돈 벌 기회를 주고 있는지도. 

그는 심각한 약세장에서는 큰 손실을 보는 이들과 함께 거래하기 때문에 내가 더 유리할 수 있지만, 강세장에서는 보통 나보다 지식이 더 많은 이들이 거래 상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츠바이크는 위험은 감수해야 하지만, 위험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처럼 끝없이 오르는 주가가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더 시장을 위험하게 만들 때는 특히 더 그렇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