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양적완화에 갇힌 중앙은행/양적완화의 그늘...한계와 부작용
'테이퍼링(양적완화 규모 축소)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다시 옥죄고 있다. 2013~2014년 겪은 '긴축발작'(taper tantrum)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는 연내 테이퍼링 착수 논의가 구체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양적완화의 그늘과 테이퍼링 이후의 금융시장을 2회에 걸쳐 짚는다. 글 싣는 순서 (上)양적완화에 갇힌 중앙은행 (下)다시 가도 낯선 길 테이퍼링 <편집자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QE·quantitative easing) 정책 향방을 둘러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연준은 최근 공개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연내 테이퍼링(양적완화 규모 축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테이퍼링 공포'의 실체를 드러냈다. 이 바람에 한국 코스피도 지난주 3100선이 무너졌다.
◇2001년 일본은행 '극약처방'이 시초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비롯한 시중 자산을 매입하는 식으로 돈을 푸는 경기부양책이다. 기준금리를 더 낮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차입금리 기준이 되는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양적완화는 연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꺼내든 카드로 잘 알려지게 됐지만, 이를 처음 쓴 건 2001년 일본은행(BOJ)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1990년대 자산거품 붕괴로 인한 장기불황이 한창이었다. 역대 최대 호황을 누린 1980년대 최고 10%에 달했던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꺾이기 일쑤였다.
경기부양에 나선 BOJ는 1999년부터 사실상 제로(0)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례없는 조치였다. 금리를 더 낮출 여지가 없어 고육지책으로 꺼낸 카드가 양적완화였다. 역시 전례없는 극약처방이었다.
BOJ는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불황에 가둔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지만, 잃어버린 10년은 현재진행형이다. '잃어버린 30년'이 된 셈이다.
BOJ는 2016년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춘 채 양적완화 공세를 강화해왔지만, 미약한 물가상승세는 지난해 10월부터 아예 하락세로 돌아섰다. 디플레이션 수렁에 다시 빠진 것이다. 양적완화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양적완화 래칫'에 걸린 중앙은행
연준과 유럽중앙은행(BOE), 영란은행(BOE) 등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도 지난해 불거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대응해 초저금리 기조 아래 양적완화 카드를 쓰고 있다. 금융위기 때보다 공세 수위를 더 높였다. 선진국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중앙은행들도 속속 양적완화나 그 비슷한 수단을 동원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1일자 최신호에서 양적완화 추세가 이대로 이어지면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장부상 자산 규모가 올해 말 28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팬데믹발 양적완화가 이 중 5분의 2를 차지하게 될 것이란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자산은 계속 늘었고, 팬데믹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금융위기 때 불어난 자산이 크게 줄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 래칫(ratchet)'에 직면했다고 경고한다. 래칫은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고 반대 방향으로는 회전하지 못하는 톱니바퀴를 말한다.
◇양적완화 끝내야 하는 이유
양적완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중앙은행이 일방적으로 시중 자산을 대거 매입하면 시장이 왜곡될 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쌓인 중앙은행의 자산은 결국 납세자들의 부담이 돼 공공재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으로부터 국채를 매입할 때 전자화폐와 비슷한 중앙은행 준비금을 쓴다. 시중은행은 이 준비금을 보유하면서 변동금리를 이자로 받는다. 급격한 돈풀기에 따른 인플레이션 위협에 금리인상 압력이 커지거나 실제로 금리가 오르면, 준비금에 대한 변동금리 부담도 커진다. 이는 결국 납세자들의 몫이 된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매입한 자산을 대거 처분하기도 쉽지 않다.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봄 팬데믹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처럼 위기가 한창이라면 양적완화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준금리를 더 낮출 수 없다면,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나 감세정책을 쓰는 게 실물경제에 더 효과적이라고 봤다. 미국에서는 연준의 양적완화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부양이 맞물려 인플레이션 압력이 위협이 될 정도로 커졌지만, ECB의 양적완화에 의존한 유럽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그만 못하다는 설명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이라도 양적완화의 한계와 결과를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공공재정 위기를 피하려면 양적완화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