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왕' 존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오일'의 주식증서/사진=위키미디어
'석유왕' 존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오일'의 주식증서/사진=위키미디어

미국 역사에 '도금시대'(鍍金時代·Gilded Age)라는 게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19세기 말, 산업화와 경제호황이 한창이던 때다. 역사적인 번영기를 '황금시대'가 아닌 도금시대라고 하는 건 그 이면의 부조리 때문이다. 당시 미국 경제가 창출한 막대한 부는 소수가 독점했다. 과소비와 과시소비 뒤에는 실업과 빈곤이 만연했다. 경제 번영은 진짜 황금이 아니라 황금처럼 보이는 도금에 불과했던 셈이다.

가브리엘 주크먼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경제학 교수는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미국에서 부의 집중도가 도금시대의 정점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그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실시간 부자 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1일 현재 미국 상위 0.00001%의 부자들은 미국 전체 부의 1.35%를 거머쥐고 있다.  

도금시대 말엽인 1913년에는 0.00001% 부자들이 보유한 부가 전체의 0.85%였다. 당시는 '석유왕' 록펠러, '석탄왕' 프릭, '강철왕' 카네기, 은행거물 베이커 등 네 가문이 0.00001% 부자로 꼽혔지만, 지금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설립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18명의 가문이 최상위 부자군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적인 거부들이 이끄는 미국 기술 대기업들도 도금시대 특정산업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독점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주크먼은 미국 1만8000개 가문이 포함된 상위 0.01% 부자들이 보유한 부도 전체의 10%가 넘어, 1913년수준(9%)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이 비중은 1970년대 말만 해도 2%에 불과했다.

미국 상위 0.00001% 부자들은 얼마나 가졌나?(미국 전체 부 대비 보유 비중)/자료=가브리엘 주크먼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경제학 교수 트위터
미국 상위 0.00001% 부자들은 얼마나 가졌나?(미국 전체 부 대비 보유 비중)/자료=가브리엘 주크먼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경제학 교수 트위터

일각에서는 미국의 1990년대 호황기를 '제2의 도금시대'로 보기도 한다. 이 시대는 2000년 닷컴버블이 터지면서 일단락됐다. 주크먼의 분석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부의 집중도는 당시 수준도 이미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부의 불평등이 더 심해졌다며, 이는 주식 소유권이 부자들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가 최근에 낸 '2021 글로벌 부(富)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부는 지난해 418조3000억달러로 1년 새 28조7000억달러 늘었다. 미국 증시의 급반등과 주택가격 상승이 촉매 역할을 했다.

전 세계 백만장자 수는 5610만명으로 지난해 520만명 늘었다. 순자산이 5000만달러가 넘는 초고액순자산자(UHNW) 수는 21만5030명으로 24% 증가했다. 백만장자들이 보유한 글로벌 부의 비중은 2000년 35%에서 지난해 46%로 높아졌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주커먼은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의 제자다. 2019년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제안한 '부유세'(wealth tax)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부자들이 재산에 비해 턱없이 적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워런의 제안은 5000만달러가 넘는 가계 순자산에 연간 2%, 10억달러를 넘는 순자산에는 6%의 부유세를 부과하자는 게 골자였다.

주목할 건 도금시대가 저물 때마다 기업들의 도산과 금융시장의 붕괴가 잇따랐지만, 그 뒤에 있던 부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라고 USA투데이는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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