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희생양 혹은 연쇄 마진콜 신호탄
전세계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이 한인 헤지펀드매니저 빌 황(한국이름 황성국)에게 쏠리고 있다. 지난 26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대형 투자은행들이 330억달러어치에 달하는 주식을 대거 매도했는데, 이 배경을 놓고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서다.
블룸버그는 뉴욕 증시 투자들이 29일(현지시간) 개장을 기다리며 스크린에 달라 붙어 연쇄적 마진콜(추가 증거금요구)이 시작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성국은 거의 5배에 달하는 레버리지(차입)로 주로 중국 기술업체, 미국 미디어업체에 투자했는데, 마진콜을 받았지만 이를 맞추지 못해 강제 청산된 것으로 보인다. 강제청산으로 시장에 나온 주식매물은 330억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주요 외신들은 이같은 대규모 매매가 장중에 진행된 것은 월가 역사상 극히 드문 일이라고 지적했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벨뷔의 미첼 쿠시 매니저는 “금융권에서 25년간 경력을 쌓는 동안 처음 목격한 일”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황성국이 운영하는 패밀리오피스(가족재단) '아케고스 캐피털'이 마진콜 한 통을 받았고, 뒤이어 다른 은행들의 추가증거금 요구가 잇따르며 대량 매도물량 쏟아진 것으로 보인다. 대량 매도물량을 흡수한 트레이더들은 한 펀드의 '강제청산'(forced deleveraging)에 의한 것이라고 FT에 전했다.
아케고스는 황성국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가족재단이지만, 상당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일부 기업에 집중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시장 참여자들은 아케고스의 자산이 50억달러에서 100억달러로 불었고 주식시장에 물린 포지션은 500억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황성국은 청소년 시기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카네기멜론대에서 경영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0년대 초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증권에서 일하던 중 당시 고객이었던 헤지펀드계 전설 줄리안 로버트슨에 눈에 들면서 월가에 입성했다.
로버트슨은 지난 2006년 한 인터뷰에서 황성국에 대해 "최고의 세일즈맨"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헤지펀드 타이거아시아를 운영하던 중 내부 거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6000만달러의 합의금을 내고 사실상 업계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황성국의 가족재단인 아케고스는 2018년 말께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은행들과 거래를 재개했다. 아케고스는 그리스어로 '창시자'라는 의미로, 교회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고 FT는 지적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황성국은 지난 2018년 유튜브 동영상에서 자신의 투자철학을 설명하며 "하느님이 투자와 자본주의를 통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수 천만 달러의 수수료에 혹해 대형은행들이 사기혐의로 유죄를 받은 황성국과 같은 '고래'를 이른바 불량 고객명단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연쇄 마진콜이라는 대혼란을 일으키면 뉴욕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경고했다. 대거 처분된 물량은 바이두,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 등 중국 기술주 66억달러어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졌지만 지난주 뉴욕 증시는 장 막판 저가 매수세에 힘입어 반등했다. 3대 지수들이 장중 하락세를 모두 만회하고 0.1~0.6%씩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뉴욕증시에서 차이나 리스크를 낮추는 과정에서 아케고스가 희생양이 됐는지 모른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최근 미국 증권당국은 회계감리를 3년 연속 통과하지 못한 기업을 상장폐지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기업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술 기업에 합작사를 설립해 이들 기업이 수집하는 소비자 데이터의 공동 관리를 요구하는 맞불작전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