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과 노동시장도 인플레이션의 중요한 변수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이들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너무 느슨해 과도하게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인플레이션 우려를 기우로 보는 이들은 느슨한 노동시장을 문제삼는다.
◇통화정책 고삐 푼 중앙은행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9월 이른바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했다.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으로 연준의 정책 목표치인 2%에 도달해도 한동안 2%를 완만하게 웃도는 수준이 될 때까지 지금의 제로(0)금리 기조를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연준은 당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위원회는 최대 고용과 장기적으로 2% 수준의 인플레이션 달성을 추구한다"며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이 장기 목표를 밑돌면, 장기간에 걸쳐 인플레이션이 평균 2%가 되고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2%에 잘 정착하도록 한동안 2%를 완만하게 웃도는 인플레이션 달성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결과를 달성할 때까지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오랫동안 물가안정 수호자 역할을 했던 중앙은행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통화정책의 고삐를 풀고 있다며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한 연준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심지어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 덴마크와 스웨덴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을 내기도 했다. 영란은행(BOE)도 연말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대출자는 이자를 내는 게 아니라 웃돈을 받고, 예금자는 이자를 받는 대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도 주요 중앙은행들은 초저금리 기조와 양적완화(자산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많은 돈을 풀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통화완화 공세 수위를 높이고 나선 건 위축된 경기를 살려 침체기에 빠진 인플레이션 압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들은 중앙은행들의 과도한 통화완화정책이 당초 의도한 것보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휴인력 넘치는 노동시장
노동시장의 유휴인력이 인플레이션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경제가 유휴인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 않고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유휴인력은 노동이 가능한 인구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을 말한다. 노동시장에서 발을 뺀 구직포기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급격히 낮아진 경제활동참가율을 반영하면 미국 실업률이 9% 이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달 공식 실업률은 6.2%였다.
필립스 곡선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중앙은행들의 고민이 커진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반비례 관계를 나타낸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임금상승률이 높아져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진다는 이론이다. 1958년 처음 제기된 필립스 곡선은 196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반론과 불황 속에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유효성을 의심받았지만, 여전히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모델로 남아 있다.
이른바 '대침체'(Great Recession)가 한창이던 2019년 10%까지 치솟았던 미국 실업률은 지난해 초 3.5%까지 떨어졌지만, 인플레이션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유휴인력이 임금상승을 막고 있는 탓이라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지난해 4월 14.8%까지 올랐던 미국 실업률이 지난달 6%대로 떨어졌지만,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019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게 그나마 낙관론자들의 관측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2010년대 장기간 이어진 경기확장기의 교훈이라면 유휴인력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