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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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했다. 전 세계 유력 펀드매니저들은 미국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최근 실시한 월례 설문조사에서 인플레이션을 최대 '꼬리위험'으로 지목했다. 

꼬리위험은 발생 가능성이 낮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실현되면 위협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잠재적인 불안 요인을 말한다. 

BofA 설문조사 결과는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보다 무서운 복병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코로나19가 1순위 꼬리위험에서 밀려난 건 1년여 만에 처음이다. 

펀드매니저들이 2순위로 꼽은 꼬리위험에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반영됐다. 채권시장의 '발작'(tantrum) 가능성이다. 

발작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인플레이션 가속화 전망이 미국 국채시장에서 투매를 부추겨 국채 금리(수익률)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안전자산'인 채권이 보장하는 고정수익의 가치도 줄기 마련이다. 미국 국채 기준물인 10년물 금리는 연초 1%를 밑돌았지만, 최근 1.6%를 훌쩍 웃돌고 있다. 2%대 진입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채권 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미국에 국한된 게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 지표에도 이미 반영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과 영국 등 주요국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있는 게 한 예다.

시장에서는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팬데믹 사태에 맞서 풀고 있는 천문학적인 경기부양 자금이 앞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재정부양에 나섰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중앙은행이나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시장과 달리 인플레이션 위협을 아직 가볍게 보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의 대척점에 있는 디플레이션이 몰고 올 장기불황의 위협이 더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지난 10여년간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 과정에서도 같은 우려가 제기됐지만, 실현된 적은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지속적인 저성장세가 장기불황으로 이어질까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인플레이션 논란에서 초점이 되고 있는 주요 논거들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미국 통화공급량 연간 변동률 추이/자료=FRED
미국 통화공급량 연간 변동률 추이/자료=FRED

◇인플레이션은 통화현상..."돈 너무 풀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인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는 통화량이 생산량보다 더 빨리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한 나라 경제가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쓰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통화공급이 급증하면 화폐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1월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정부와 중앙은행이 팬데믹 사태에 맞서 푼 자금은 19조5000억달러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쓴 돈의 20배나 되는 사상 최대 규모지만, 시중에 풀리는 경기부양자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인플레이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막대한 자금을 풀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반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이들은 이번에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 비중이 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미국 통화유통속도 추이/자료=FRED
미국 통화유통속도 추이/자료=FRED

◇양보다 속도..."돈이 안 돈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기우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막연하게 풀린 통화량보다 '돈이 도는 속도'(velocity of money)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앙은행들이 마구 돈을 찍어내고도 인플레이션을 되살리지 못한 것도 이 속도가 더뎠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블룸버그는 돈이 풀리면 사람들이 이를 소비하면서 돈의 손바뀜 속도가 빨라져야 하는데, 돈의 유통 속도는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이 속도가 더 급격히 떨어져 사상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다. 지난 10년치의 절반 수준이었다.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고 끌어모으고 있는 건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 탓이다. 세계 경제가 일본이 겪은 장기불황을 따라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이런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일본 장기불황의 배경이 된 디플레이션은 물가하락 기대를 높였다. 경기에 대한 불안감 속에 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본 일본인들이 소비를 미루자 경제가 더 냉각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반면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이션 위협이 돈이 도는 속도를 급격히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가가 더 오르기 전에 소비하려는 심리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기의 교훈으로 보다 건전해진 은행 시스템과 소비력이 왕성한 20~54세 인구의 증가도 통화 유통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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