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선적의 길이 400m 짜리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수에즈 운하의 통행을 사흘째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프랑스우주청(CNES)의 위성사진./사진=연합뉴스
파나마 선적의 길이 400m 짜리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수에즈 운하의 통행을 사흘째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프랑스우주청(CNES)의 위성사진./사진=연합뉴스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이 수에즈운하에서 좌초하면서 바닷길이 막혔다. 수에즈 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항로다. 글로벌 무역량의 12%가 이 길을 지난다. 

일본 기업 쇼에이기센가이샤 소유인 에버기븐의 길이(399.94m)는 한때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던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높이(381m, 첨탑 제외)를 웃돈다. 선박의 몸체가 워낙 커, 지난 23일 좌초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사고 수습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가 막히자 일부 선박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서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를 택하고 있지만, 시간을 일주일 이상 허비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길이다. 해운정보업체 로이드리스트는 이번 사태로 인한 비용이 시간당 4억달러(약 452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주요 길목인 해상물류 '초크포인트'(choke-point)가 전에 없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수에즈 운하뿐 아니라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후르무즈 해협 등이 급격히 늘어난 물동량과 안전위협, 기후변화 등으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해상무역 급성장 '병목현상'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해상무역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전 세계 해운 화물이 2010년 84억t에서 2019년 111억t으로 늘었다. 주요 항로에 배가 몰리는 데 따른 병목현상이 불가피해졌다.

식품과 연료 등 중요 품목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에 따르면 해상무역 초크포인트를 하나 이상 통과한 전 세계 곡물 수출물량은 2000년 42%에서 2015년 55%로 늘었다.

물류 통행 수요가 급증하자 초크포인트의 확장이 이어졌다. 2015년에는 35㎞의 '신수에즈 운하'가 뚫렸고, 기존 운하도 준설됐다. 80억달러가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 덕분에 통행량이 늘고, 더 큰 배도 지날 수 있게 됐다.

이듬해에는 파나마 운하 확장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이 운하를 지날 수 있는 화물선이 전체의 45%에서 79%로 늘었다.

빠듯한 운하 통행 환경을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홍해와 지중해를 육로로 잇는 수메드 송유관이 대표적이다. 1977년 이 송유관이 개통되면서 수에즈 운하를 통하지 않고도 원유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원유나 천연가스 등 일부 품목이 아니고는 육로 수송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안 항로로 북해를 눈여겨 보고 있다. 쇄빙선으로 북극해의 얼음을 뚫고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항해할 수 있는 기간이 연간 3~4개월밖에 되지 않고, 얼음 상황도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직은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지정학적 불안에 해적까지

지정학적 불안도 초크포인트를 압박하고 있다.

한 예로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연합군과 맞선 후티반군은 2019년 홍해에서 한국 시추장비를 예인하던 사우디 선박을 나포했다. 

예멘 연안으로 아프리카 동북부 아덴만과 홍해 사이의 밥알만뎁 해협은 지중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초크포인트다. 전 세계 유조선의 10%가 폭이 30㎞에 불과한 이곳을 지난다. 소말리아 해적의 주요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최근 전 세계 해상에서 일어난 해적질의 절반이 아덴만을 비롯한 소말리아 연안과 인도네시아 연안에서 발생했다.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있는 말라카 해협은 최소폭이 2.7㎞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 해수면 불안도

기후변화도 바닷길을 위협한다. 지구온난화는 언젠가 북극해의 얼음을 녹여 새로운 항로를 열어줄지 모르지만, 극심한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은 이미 현실이 됐다. 2016년 중앙아메리카를 장기간 휩쓴 가뭄이 대표적이다.

당시 파나마 운하는 가뭄에 따른 해수면 저하로 대형 선박의 통행을 제한해야 했다. 반대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항구가 기능을 잃을 수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수에즈 운하 사태처럼 배 한 척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무역로를 이렇게 오랫동안 마비시킬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에버기븐 사태가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글로벌 해상무역로의 분열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수습하기 더 어려워질 것인 만큼,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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