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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 D-1]트럼프-김정은 '핵담판'을 위한 FT의 제언20세기 성사됐던 역사적 정상회담들이 주는 교훈 소개
  • 신창식 기자
  • 승인 2018.06.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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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의 역사상 첫 정상회담(6월12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외교·안보 라인을 대동해 회담 개최지인 싱가포르에 일제히 집결했다. 양국 정상이 이례적으로 회담 이틀 전 개최지에 도착해 회담을 대비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북한은 체제보장을 최우선으로 '세기의 핵담판'을 예고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전쟁 이후 70년 동안 이어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할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통적으로 역사적 정상회담은 강대국 지도자들이 전쟁과 평화를 논의하는 것'이라며 사상 첫 만남을 앞둔 트럼프와 김정은에게 교훈을 줄 만한 역사적 회담들을 소개했다. 

◇ 뮌헨 회담(1938년)

독일 히틀러(오른쪽)와 영국 체임벌린 

독일의 '수데텐란트' 지역 병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정상들이 뮌헨에서 개최한 회담이다. 나치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계가 많은 수데텐란트 병합을 요구했다. 뮌헨회담으로 독일은 수데텐란트를 무혈로 차지했고, 다른 소수민족 지역은 폴란드와 헝가리에 넘어갔다. 이 회담은 나치즘 유화라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악명으로 높다.

FT는 '영국이 미래의 평화 보장을 위해 체코 영토를 독일에 넘겼지만, 아무런 가치가 협정을 맺는 꼴이 됐다'며 '뮌헨회담이 근시안적인 결과물의 대명사가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당시 뮌헨히담을 '승리'라고 평가했으며, 회담에 참석했던 네빌 체임벌린 영국 수상은 '명예로운 평화'를 쟁취했다며 극찬을 받았다.

FT는 뮌헨회담을 통해 '역사의 평가는 정상회담 직후 분위기와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트럼프가 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고 주장한다면 뮌헨회담의 역사적 평가를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FT는 지적했다. 

◇ 얄타 회담(1945년)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왼쪽부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크림반도 남부휴양 도시 얄타에 모여 2차 대전 종전을 논의했다. 반(反) 나치 연합을 유지하고 소련이 대(對) 일본 전쟁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루스벨트는 소련이 1939년 강제 병합한 폴란드 영토를 유지하는 데에 동의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루스벨트가 전쟁 상황에서 별다른 옵션이 없었다'고 두둔한다. 하지만 오늘날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은 얄타회담으로 소련에 넘어갔다며 얄타회담을 '배신'과 동의어라고 평가한다고 FT는 전했다. 

FT는 얄타회담의 교훈으로 '당신이 협상테이블에 없다면 당신의 이익이 팔려 나갈 수 있다고 걱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일본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우려한다고 FT는 덧붙였다. 

◇ 베이징 회담(1972년)

마오(왼쪽)와 닉슨

리차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1972년 첫만남은 냉전 시대에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기록된다. 수 십년 동안 이어졌던 미중의 적대적 관계가 끝나는 첫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과 저우 언라이 중국 총리 사이 수 개월 동안 비밀 외교 끝에 역사상 첫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이 회담으로 공산주의 블록이 거대한 단일조직이 아니며 소련과 중국의 이익이 분열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닉슨은 중국 방문 당시 "세계 변화의 한 주"였다고 말했지만, 첫 미중정상 회담 직후 분위기는 전향적이지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1974년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중 사퇴했고 1976년 마오는 사망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완전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FT는 '만남 자체가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있다'며 '트럼프와 김정은처럼 역사적 적국의 수장들이 악수를 하는 사진이 전 세계에 던지는 화두가 있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 레이캬비크 회담(1986년) 

레이건(왼쪽)과 고르바초프

로날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카힐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공포와 기대감을 배경으로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만났다. 당시 레이건 시대에 미국의 군비증강과 소련의 민간한 대응으로 전 세계에는 핵전쟁 공포가 심각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소련에서 탄생한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로써 서방에 대해 개방적이며 위험을 감내할 준비를 했다고 FT는 평가했다. 정상들 사이의 개인적 케미(궁합)이 맞다면 회담이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레이캬비크 회담은 보여준다고 FT는 전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당시 회담을 통해 "10년 내에 모든 핵무기를 제거(elimination)한다'고 합의했다.

FT는 '두 명의 정상들이 협상장에 단독으로 있으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의외의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대비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와 만남 이전에 수 십시간 브리핑을 받고도 '돌발적 합의'를 했는데, 하물며 이번 북미회담 이전에 트럼프는 단 한차례의 내각회의도 가지지 않았다고 FT는 덧붙였다. 

신창식 기자  csshin@businesspl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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