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생전 모습 / 사진=연합뉴스
스티브 잡스의 생전 모습 / 사진=연합뉴스

그는 '히피'였다. 머리를 어깨까지 길게 길렀고, 음주와 약물을 즐겼다. 학교는 제대로 가지 않았다. 어쩌다 학교에 가게 되도 불량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선생님과 마찰이 잦았으며, 그의 부모는 학교에 자주 불려가 사과해야 했다.

그의 괴팍한 성격은 회사에서도 이어졌다. 회의실에 직원들을 불러모아 뜬금없이 질책하는 게 잦았고,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는 건 오직 자신만 할 수 있었다. 이런 그를 직원들은 피해다녔다. 복도나 엘레베이터에서 그를 만나는 걸 직원들은 두려워했다.

애플(Apple)의 공동 창업자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년) 얘기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잡스는 자기 주장이 강한 괴팍한 성격이었다. 그의 이같은 성격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게 잡스가 젋은 시절 다닌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Atari) 시절 얘기다.

1974년 봄 아타리는 '돈 벌고 싶은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게 된다. 이 공고는 당시 18살이던 잡스의 관심을 끌었다. 어느 날 아타리 인사담당자가 개발 부서장에게 급히 전화를 했다. 전화 내용은 "이상한 남자가 회사로 찾아와 채용할때 까지 버티겠다"는 것이었다.

개발 부서장은 당시 잡스의 첫 인상에 대해 "넝마와 다름없는 히피 옷을 입은 대학 자퇴생이었고 냄새도 안 좋았다. 하지만 눈은 번득였고 무언가 목표가 있으면 꼭 해내야 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이로 부터 2년 후인 1976년 4월 잡스는 친구 스티브 위즈니악(Steve Wozniak)과 함께 애플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두 사람이 타던 소형 폴크스바겐 자동차와 구형 컴퓨터를 팔아 마련한 1000달러였다. 

물론 1000달러의 자본금은 사업을 영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애플이 처음 내놓은 시제품 '애플1'을 어떤 컴퓨터 매장 사장이 대당 500달러에 50대를 주문하기도 했지만 사업 초기 자금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잡스는 투자자를 찾아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의미있는 계약에 성공했다. 잡스를 만난 어떤 전자회사 사장이 한 컴퓨터 매장에 2만5000달러어치 주문을 받도록 주선해주면서 사업 초기에 큰 보탬을 얻게 된다. 이때 주선해 준 전자회사 사장은 곧이어 잡스에게 2만 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빌려주기도 했다. 이 전자회사 사장이 잡스의 전기 등을 통해 초기 후견인으로 잘 알려진 밥 뉴튼(Bob Newton)이다.

뉴튼은 잡스의 전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잡스는 결단력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직접 컴퓨터 매장 사장에게 전화해 주문을 권유할 때까지 그는 내 앞에서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잡스의 끈질김에 그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는 얘기다.

팀 쿡 애플 CEO가 2017년 한 행사에서 스티브 잡스 사진을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팀 쿡 애플 CEO가 2017년 한 행사에서 스티브 잡스 사진을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잡스에게 '혁신'의 단어가 처음 붙은 건 1980년대였다. 당시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컴퓨터 '매킨토시'(Mackintosh)를 출시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잡스는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등을 잇따라 히트 시키며 '혁신'을 그를 표현하는 대명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매킨토시'는 잡스가 애플에서 쫒겨나는 계기도 됐다.

경쟁사 IBM에서 비슷한 시기 내놓은 퍼스널 컴퓨터(PC)가 매킨토시보다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됐기 때문이다. 매킨토시의 판매량은 급감했고, 애플의 매출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은 애플의 경영진 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잡스에게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결국 잡스는 애플을 떠나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세우고 영화 제작자 조지 루카스(George Lucas)로 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Pixer)를 사들여 디즈니 애니매이션을 위탁 제작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 역시 초기에는 쉽지 않았지만 '끈질김으로 성과를 내는' 잡스의 전략을 결국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애니매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의 흥행 성공으로 1995년 픽사를 성공적으로 기업공개 시킨 주역이 됐다. 그리고 이 일은 그가 애플을 떠난지 10년 만에 성공적으로 귀환하는 계기도 됐다. 그가 애플에 귀환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애플의 혁신 대명사와 같은 제품의 출시는 '미뤄졌거나, 아예 없을 것'이란 것도 일각의 평가다.

잡스의 1000달러 자본금으로 시작된 애플은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1위에 가장 오래 머문 기업이자, 브랜드 가치 1위 기업이 된 상태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잡스가 생전인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강조해 유명해진 말이다.  이 말은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의미로 번역돼 지금도 스티브 잡스의 대표적 명언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잡스의 일생은 실제 '끈질기고 우직하게 혁신'한 성과의 연속이었다. 

자신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끈질기게 시도하는 그의 태도가 현재의 애플을 만든 기반이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평가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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