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이 지난 7월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규제혁신회의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금융산업이 역동적인 경게의 한 축을 이루고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규제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금융산업에서 BTS와 같은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이 지난 7월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규제혁신회의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금융산업이 역동적인 경게의 한 축을 이루고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규제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금융산업에서 BTS와 같은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와야 한다."

2006년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원장이 던진 화두다.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필요성에 그때도 지금도 공감하지 않는 이는 없다.

오랜 시간 금융회사들은 '금융의 삼성전자'를 목표로 달렸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도 국내에 세계적인 금융회사는 없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기는커녕 명함도 내밀기 힘든 게 현실이다.

금융회사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첫손에 꼽히는 게 '관치'다. 금융은 실물경제와 서민 지원 등의 역할이 중요해 어떤 산업보다 공공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역대 정권은 차이는 있지만 이를 명분으로 규제 또는 정책지원 요구 등을 통해 금융회사들을 쥐락펴락했다.

또 사실상 주인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금융그룹 수장 자리를 논공행상의 도구나 최고 권력자 친구에게 주는 선물로 이용했다. 최고 권력자 등이 정치적 목적이나 욕구에 따라 밖에서 흔들고 금융업과 회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낙하산'이 내려와 안에서 들쑤시다 보니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몸살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언제 어떤 압력을 받을지 모르고, 길어도 5년이면 정책 기조가 바뀌는 상황에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차근차근 실행해나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낙하산이 오지 않아도 2~3년 후에는 자리를 내놔야 하는 최고경영자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경영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임기를 마친 후 회사가 도약할 발판을 만들기보다 당장 눈앞에 놓인 성과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금융회사들이 정부의 입맛만 맞추면 안전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데 안주한 게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이유라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또한 관치의 부작용이다.

정권이 바뀌면 금융지주 회장이 물갈이되는 일이 당연시됐던 시대를 지나 최근 몇 년 사이 관치가 잦아들면서 금융회사들은 최대 실적 행진을 하고 해외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안팎에서 들쑤시는 일이 줄어들고 금융그룹 수장들의 재임 기간이 길어지는 등 조직과 지배구조가 안정화되고 미래를 본 리더십이 발휘되다 보니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관치가 금융회사의 성장과 글로벌 플레이어로의 도약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규제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금융의 BTS'가 출현하도록 새로운 장을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금융회사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니 환영할 만한 얘기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발목을 잡지 않는 대신 몸통을 누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란 생각에서다.

근래 케이팝과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등 우리나라의 대중예술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톱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앞선 10여년간 대중예술을 재단하고 주무르던 권력의 압박이 사라져 실력을 있는 그대로 발휘할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종사자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기 일에만 집중한 것 외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는 것이다. 금융의 BTS, 금융의 삼성전자가 만들어지는 길도 다르지 않다.

전보규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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