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 정부청사에서 열린 5대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 이 자리에는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배부열 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이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21일 정부청사에서 열린 5대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 이 자리에는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배부열 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이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정권이 바뀌면 금융사 CEO가 물갈이되는 게 언제 적 얘기인데, 얼마나 옛날로 돌아가려는 것인지 모르겠다."(시중은행 관계자)

금융권에 '4대 천왕'의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4대 천왕 시대가 막을 내린 지 약 10년만이다.

4대 천왕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던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회장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굵직한 현안을 주도한 공도 있지만 최고 권력의 뒷배를 바탕으로 당국 위에 군림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고, 자회사 인사와 경영도 지나치게 좌지우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금융권에 대한 정부 간섭의 통로 역할을 하면서 '관치금융'이란 말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일상화되도록 만들기도 했다.

금융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조직 안정을 해치며 '줄 서기'를 부추겼던 4대 천왕의 시대는 2013년 어 회장이 물러나면서 마감됐다. 이후 '서금회', '부금회' 등 특정 대학이나 출신이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그 권세가 4대 천왕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후 정권의 입맛보다 경영에 집중하고 성과로 평가받게 되면서 연임에 성공하는 금융지주 회장이 늘었고 금융그룹의 지배구조 안정화로 연결됐다.

하지만 최근 이런 상황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김지완 BNK금융 회장이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에 밀려 조기 사퇴한 데 이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도 비슷한 처지가 됐다.

금융위원회는 9일 정례회의를 열고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에게 '문책 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문책 경고 의견을 올린 지 1년 6개월여만이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해임 권고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뉘는 데 문책 경고 이상을 받으면 3~5년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된다.

사실상 손 회장의 연임 길목을 막은 것이다. 손 회장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반으로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됐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손 회장 제재안과 관련해 "지체된 일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기가 공교롭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우리금융의 차기 회장 선임 절차 시작까지 한 달여를 앞뒀기 때문이다.

손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말까지로 우리금융은 이르면 다음 달 중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BNK금융의 성장을 이끈 김 회장이 여당의 문제 제기 한 달도 안 돼 물러난 직후 손 회장의 연임을 봉쇄할 금융당국의 결정이 나오면서 금융권의 '낙하산 투하'와 관치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낙하산과 관치는 능력보다 줄서기를 부추겨 조직의 근간을 흔든다. 조직의 불안정성은 위기 대응 체제와 업무 능력 저하를 야기한다. 금융회사의 역량 부족은 한 기업이나 그 구성원의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 무한히 이어지는 돈의 흐름처럼 산업과 사회 전반을 좀먹고 서민의 일상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전보규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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