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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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정책으로 보면 '제3세계' 나라와 다를 바 없다."

독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이 최근 성명에서 호주의 전기차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호주 정부는 무공해 자동차에 좋게 보면 무관심하고, 나쁘게 보면 반대하고 있는 듯하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유럽에서 먼저 선보인 전기차 'ID.3'과 'ID.4'가 빨라야 2023년에나 호주에서 출시될 것으로 예상했다. 2025년 세계 전기차시장 선두로 부상하려는 폭스바겐이 호주시장에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폭스바겐의 추격을 받고 있는 테슬라도 호주에서 고전하기는 마찬가지다. 호주는 2018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이사회 의장 자리를 물려 받은 로빈 덴홀름의 고향이다.

◇"전기차 정책? 호주는 '제3세계'"

블룸버그는 13일 세계 최대 전기차 메이커인 테슬라조차 전기차에 대한 호주의 반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업체들이 전기차에 호의적인 시장에 먼저 전기차를 공급하느라 호주에서는 출시를 미루거나 호주를 아예 건너뛰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일본 닛산은 일부 전기차를 호주에서 출시하지 않을 계획이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NEF)에 따르면 호주의 도로교통 탈탄소 정책 점수는 주요 20개국(G20)에서 꼴찌 수준이다. 유럽연합(EU) 의장국(올해 상반기 포르투갈)을 제외한 19개국 가운데 호주는 27%로 러시아(16%), 사우디아라비아(25%)에 이어 끝에서 3위를 차지했다. 전체 순위는 프랑스와 독일, 중국이 각각 80%로 가장 높고, 일본(72%), 한국(71%)이 뒤따라 5위권에 들었다.

지난해 호주에서 판매된 새 차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한 비중은 0.7%에 불과했다. 영국과 EU에서는 전기차 비중이 10%가 넘었다. 호주에서는 심지어 트랙터가 전기차보다 두 배 더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호주 시드니의 전기차협의회 CEO인 베야드 자파리는 "(호주는) 전기차업체에 특이할 정도로 적대적인 시장"이라며 호주의 정책이 국민들을 기름 잡아먹는 떼거리로 보이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자료=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
자료=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

◇전기차 보조금 반대에 수요도 밀려

호주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탄소배출 비중은 18%에 이른다. 1인당 탄소배출량이 세계 최대 수준이다. 지난해 일어난 산불로 영국 국토면적만한 땅이 잿더미가 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지만, 전기차 정책은 소극적이기만 하다. 

스콧 모리슨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기술투자 로드맵도 배터리와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을 미온적으로 다뤘다고 블룸버그는 꼬집었다. 

지난 2월에 낸 '미래연료전략' 토론자료도 마찬가지였다. 수소연료전지를 비롯한 신기술을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많은 나라에서 도입한 전기차 등에 대한 보조금에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해 말 현재 호주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약 50종인데,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없어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만큼 수요가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테슬라의 양산형 전기차 '모델3'는 호주에서 최저가가 6만6900호주달러(약 5730만원), 고급형인 '모델S'는 18만9990호주달러(약 1억6300만원)쯤 된다. 이에 비해 미국과 중국에서는 모델3 가격이 각각 3만8490달러(약 4340만원), 24만9900위안(약 4300만원)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닛산의 '리프' 해치백 모델은 5만호주달러로 토요타 '하이럭스', 포드 '레인저' 같은 픽업트럭보다 최대 1만6000호주달러 비싸다. 하이럭스와 레인저는 호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다.

문제는 호주에서 전기차 가격이 기존 자동차 수준으로 떨어져도 수요가 급격히 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블룸버그NEF는 2030년에도 호주에서 팔리는 새 자동차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18%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넷제로' 선언 거부...과도한 석탄 사랑

호주 정부는 세계 각국이 파리협정에 따라 동참하고 있는 '넷제로'(net zero, 탄소중립) 선언을 거부하며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190여개국이 채택한 파리협정은 산업혁명 이후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상당히 낮게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한다. 더 나아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는 넷제로를 달성해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다. 많은 나라들이 2050년을 넷제로 달성 시한으로 삼고 있는 이유다.

이에 비해 호주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05년 수준의 26~28% 줄인다는 낡은 목표를 고수하고 있다. 나라 경제의 핵심인 석탄산업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해서다. 호주는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이다.

집권 보수당의 모리슨 총리는 재무장관 시절이던 2017년 의회에 석탄 덩어리를 들고 들어와 야당인 노동당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겁먹지 마라. 해치지 않는다. 이건 석탄이다."

2018년 총리로 취임한 모리슨은 이듬해 유세 중에 전기차는 트레일러와 보트를 끌 수 없다며 전기차가 주말을 끝장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그해 의회 선거에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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