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투자 바람이 거세지면서 '그린버블'(green bubble) 경고등이 켜졌다.
친환경을 내세운 '녹색주'의 가격이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 많지만, 투자자들은 '테슬라'를 또다시 놓칠 수 없다며 달려들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지난달 고객사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친환경 투자 방침을 강조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인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넷제로'(net zero, 탄소중립) 달성 운동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블랙록의 펀드 투자군에서 넷제로 달성에 실패한 기업을 배제하겠다는 경고로 풀이됐다.
핑크 회장은 지속가능한 투자로 가는 투자지형의 구조적인 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펀드정보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 요소에 집중하는 ESG 투자를 위해 모인 글로벌 펀드 운용액은 지난해 3500억달러에 달했다. 한 해 전(1650억달러)보다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친환경 투자가 증가한 건 소비수요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짚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NEF)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 정부, 가계가 지난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에 쓴 돈만 5000억달러가 넘는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속속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선언에 동참하고 있는 만큼 친환경 부문에 대한 투자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수조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했다.
◇'넷제로' 바람 친환경 투자 가속...'그린버블' 경고등
친환경 투자가 가속화할수록 그린버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 정유업체 토탈의 패트릭 푸야네 CEO는 최근 FT와 한 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업종 기업 주가 수준이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25배까지 치솟는 건 "말도 안 된다"(crazy)며 "거품이 있다"고 말했다.
고든 존슨 GLJ리서치 CEO도 "그린버블은 100%"라며 "내가 맡고 있는 거의 모든 태양광 회사들은 실적이 나빠졌는데 주가는 3배 올랐다. 이는 정상이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30개 주요 신재생에너지 기업 주가를 반영하는 S&P글로벌청정에너지 지수는 작년 한 해 동안 2배 가까이 뛰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지수의 PER은 41배에 이른다.
미국 증시 우량주를 대표하는 S&P500지수는 지난해 16% 뛰었고, PER이 23배인 데 비하면 녹색주의 주가 수준이 한참 높은 셈이다.
지난해 미국 증시의 랠리를 부추긴 '스팩'(SPAC) 바람도 친환경 투자를 부추겼다.
스팩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단지 IPO로 조달한 자금이 전부인 '껍데기 회사'(shell company)다. 비상장 기업 인수로 '묻지마 투자'를 유발해 시장 과열, 거품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스팩인사이더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부문은 스팩들이 지난해 인수한 기업들의 업종 가운데 4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였다.
◇투자자 기반 확대..."'테슬라', 다시는 못 놓쳐"
친환경 투자를 낙관하는 이들은 단기적인 가격 수준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다.
마크 프레시니 크레디트스위스 애널리스트는 덴마크 해상풍력 회사인 오스테드 같은 곳에 투자하는 이들은 이미 있거나 건설 중인 자산의 가치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적어도 향후 30년에 걸친 화석연료로부터의 이탈과 이 과정에서 이룰 자본화를 염두에 둔 투자라는 설명이다.
오스테드는 실적 개선세가 미약하지만, 최근 3년 동안 주가가 3배 가까이 올랐다.
프레시니는 다만 오스테드 같은 곳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간과하는 리스크(위험)도 상당하다고 했다. 연안 풍력 발전 프로젝트가 환경 문제로 중단될 수 있고, 더 큰 다른 에너지 기업들이 연안 풍력발전소의 토대가 될 해저 이용권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수소연료회사 플러그파워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50%가량 뛰었다.
모세 서튼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는 플러그파워의 시가총액(약 250억달러)이 올해 매출 추정치의 약 80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수소연료시장에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봐도, 회사 내재가치를 훌쩍 넘어선 것이라는 평가다.
서튼은 지금의 플러그파워를 1999년의 마이크로소프트(MS)에 빚대기도 했다. MS는 닷컴버블이 붕괴한 뒤에도 기술업계 선두주자로 남았지만, 주가를 회복하기까지는 10년도 더 걸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투자자라면 기회를 잡고 싶은 법이다.
콜린 러시 오펜하이머 애널리스트는 "처음에는 성과가 좋았던 제한된 숫자의 ESG 투자에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모든 기업에 폭넓은 기반의 투자자들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은 다시는 '테슬라'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