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보험·증권 특수근무형태직 상황 토로..증권 비정규직 "난 반댈세!"

임금 근로자 10명 중 3명 이상이 비정규직인 사회. 매년 늘어나는 비정규직 수는 '좋은 일자리', '공정한 사회'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심을 얻기 위해 비정규직 해소를 들먹여왔다.

그리고 '헛발질'을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는 다를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고용불안 해소를 넘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를 선언했다. 역대 정부 중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며 변화를 예고했다.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비정규직 문제를 새 정부는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편집자 주]

새 정부의 국정 우선과제인 일자리 창출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시작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금융권을 필두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비율이 낮은 은행업계의 경우 정부 정책에 반색하며 동조 행보를 보이는 한편 카드·보험·증권업계에서는 특수근무형태직도 고려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실제 현재 이들 업계 내 비정규직들 또한 정규직화를 크게 반기지 않는 모습이다.

비정규직화 최선봉에 선 업권은 단연 은행권이다. 2007년 이후 대부분 은행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부담요소가 적은 데 따른 것이다. 주요 은행별로 비정규직 인원을 보면 지난 3월 말 기준 △NH농협은행 2979명 △KB국민은행 1295명 △신한은행 781명 △우리은행 769명 △KEB하나은행 520명 △IBK기업은행 436명 등이다.

이미 한국씨티은행은 무기계약직 직원 300여명을 일괄 정규직화하기로 했으며,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도 준정규직인 무기계약직 창구 담당 직원 3000여명을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신한은행 또한 비정규직 781명 중 새 정부 보호대상이 아닌 변호사 등을 제외한 단순 사무인력 169명 중 40%(70여 명)를 정규직으로 바꾸고, 다음달부터 사무인력을 기존 기간제 대신 정규직 채용으로 대체할 방침이다. 시중은행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은 NH농협은행(18.1%)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현 은행권 비정규직은 인원도 적거니와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 직원이 대부분이다. 명예퇴직 후 다시 채용된 직원, 성과에 따라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경력단절여성 등으로 구성돼서 정규직 수요는 많지 않은 편이다.

반면 카드·보험·증권업계에서는 업권 영업 특성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카드업계의 경우 종합계약직, 콜센터 직원 등 특수근무형태가 많아 계약직 비율이 높다. 현재 카드업계는 정규직화를 공론화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지만 카드사의 수익성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부담까지 늘어나면 회사가 존폐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3월 말 기준 7개 카드사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현대카드 30.6% △우리카드 26.78%(작년 말 기준) △롯데카드 24.23% △BC카드 16.19% △신한카드 8.7% △삼성카드 11.3% △KB국민카드 2.4% 등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비정규직 인력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난 이후 고용보험 등 관련 처우에 대한 세부적 점검이 필요할 것”이라며 “정부 기조에 따라 점진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없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역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세를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움직임은 없다. 보험업계는 일단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공감하지만 보험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모든 설계사 및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 추진은 비용 부담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특수형태 근로자인 보험설계사는 성과에 따라 여러 회사를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 때문에 내부 찬반 또한 엇갈리는 추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계사들 또한 정규직화를 원하는 게 아니다. 4대보험을 가입하면 회사는 비용부담이나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현재 실적이 별로 없는 설계사들은 어느정도 정리될 수밖에 없어 오히려 고용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제도권 말고 GA(법인판매대리점)쪽은 가뜩이나 이동이 잦고 소속감이 적어 고용 불안은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사업보고서를 내는 국내 20개 생명·손해보험사 소속 기간제 근로자는 지난해 말 기준 2774명으로 전체 직원 4만4759명 가운데 6.2%를 차지했다. 업계별로 보면 3월 말 기준 △현대해상 8.9% △삼성화재 8.6% △교보생명 4.9% △KB손해보험 3.9% △삼성생명 3.7% △한화생명 2.1% △동부화재 1.9% 등이다.

증권업계에서도 비정규직 정책이 업계 상황과 역행한다는 견해다. 증권가는 리테일, 영업 등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성과를 낸 만큼 인센티브를 받아가는 구조다. 이들은 정규직 일자리에 얽매이기보다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비정규직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성과를 많이 인정해주는 회사로 옮기고 있다. 겉으로는 비정규직이지만 사실상 고소득·자발적 계약직 직원이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비정규직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맞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에 구조상 어려움이 존재한다.

증권업계 비정규직 비율은 3월 말 기준으로 △메리츠종금증권 55.0% △KB증권 27.3% △한국투자증권 22.3%(지난해 말) △NH투자증권 20.3%(지난해 말) △미래에셋대우 10.4% △삼성증권 8.3% 등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메리츠종금증권의 경우 고정 급여를 낮추고 인센티브 비중을 높이면서 업계 상위로 뛰어오른 바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업계에선 구조조정이 잦다 보니 성과를 따져 몸값을 높이는 방법이 오히려 낫다”면서 “고용시장 안정화라는 큰 틀에는 공감하지만 취지와 달리 증권업계 내부에서는 비정규직의 반발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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