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근로자 10명 중 3명 이상이 비정규직인 사회. 매년 늘어나는 비정규직 수는 '좋은 일자리', '공정한 사회'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심을 얻기 위해 비정규직 해소를 들먹여왔다.

그리고 '헛발질'을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는 다를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고용불안 해소를 넘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를 선언했다. 역대 정부 중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며 변화를 예고했다.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비정규직 문제를 새 정부는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편집자 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부문에서 발화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민간기업으로 퍼진 가운데 업계는 우왕좌왕이다. 공공기관 대상 관련 가이드라인조차 모호해 ‘비정규직 제로플랜’이 산업 현장에 정착하기까지는 장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안착하는 데는 걸림돌이 만만찮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재원 마련 방안이다. 계약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사측은 재원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후 임금 수준을 똑같이 유지한다고 해도 복리후생비 등에서 지출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재정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재원 마련 방안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지원할 가능성도 높다. 세금을 기반으로 재정을 투입할 시 형평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재원 부족에 따른 고용 경직성도 예상된다. 인력 비용이 추가되면서 이윤이 줄면 기업은 채용 인원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실적 악화로 인한 기존 인력 감원 소지도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규직 전환으로 당장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되겠지만 그 이후 젊은이들에게 추가적 일자리가 더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함정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범위를 어디까지로 두느냐도 논란거리다. 업장에 외주 업체 근로자가 파견 나와 근무한다고 했을 때 이들을 외주 근로자로 볼지, 비정규직으로 볼지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또 ‘과거 2년간 일했고, 앞으로 2년간 할 업무’를 상시·지속 업무 기준으로 삼고 정규직 전환을 시켰던 예전 정부 사례를 기준으로 한다면 대상자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정규직 전환 후 직원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쟁점이다. 용역 혹은 파견업체 직원을 종전 회사가 흡수한다면 종전 정규직과 임금, 복리후생 격차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까지 험로가 예상되는 가운데 해당 정책이 허울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자회사를 만들고 일단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후 자회사를 청산하는 방식의 꼼수가 나올 수 있는 탓이다. 예를 들어 A 기업의 청소용역 파견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를 설립해 해당 자회사의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취지인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맞지 않고 도로 간접고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자체가 일시적이고 인기 영합주의적인 정책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단편적인 대책보다는 정부가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간접적으로 노동과 기업부문에서 정확한 정보가 유통되고 정상적인 시장원리가 작용하도록 감독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수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왜곡된 노동시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여도에 따른 임금, 보상적 임금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이 퇴출될 수 있도록 시장의 매커니즘이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청와대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가 설치됐고, 기획재정부는 추경 편성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새 정부가 케케묵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