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과 백금, 실물자산 랠리 주도…인상적인 금값 상승세 뛰어넘어
투자자들, 지정학적 불안 속에서 '손에 잡히는 가치' 우선시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도 단순한 투기 넘어 실물자산의 구조적 수요 반영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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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금값 상승세가 주목받고 있지만 실물자산 전반으로 대규모 자금 이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은과 백금이다.

은 현물 가격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 약 70% 상승해 온스당 50달러(약 7만1000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에는 사상 최고가인 온스당 51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백금 현물 가격은 연초 대비 80% 올라 온스당 1620달러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약 13년만의 최고가다.

금 현물 가격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 52% 상승해 7일 온스당 4000달러를 돌파했다 9일 온스당 3972달러에서 거래됐다.

온스당 은값(달러) 추이 / 자료: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온스당 은값(달러) 추이 / 자료: 트레이딩이코노믹스

금, 은, 백금 가격의 동반 상승은 단순히 인플레이션 헤지나 금리 전망 때문만이 아니다.

투자은행 삭소방크의 올레 한센 원자재전략가는 이에 대해 8일자 보고서에서 한층 깊은 변화의 징후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처럼 강력한 가격 상승세야말로 귀금속 시장 전반에서 ‘실물 가치 저장소’로 전환하는 커다란 추세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는 "점점 더 분열된 세계에서 서방이 시장•결제 시스템•준비자산을 무기화하면서 미국 달러화와 국채 같은 전통 안전자산에 대한 신뢰가 약화했다"고 적었다.

그는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해진 서방의 제재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이런 신뢰 붕괴로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가 전통 금융시스템 밖에서 안전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이런 변화는 중앙은행들의 사상 최대 규모 금 매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투기 아닌 구조적 수요가 형성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센 전략가는 "단기 금리 변동에 반응하는 투기 자금이 아니라 지속적인 구조적 안전 추구 수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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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요인도 올해 금값 상승세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새로운 무역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약화 및 미 정부의 부채 부담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는다.

한센 전략가는 "미국이 이제 방위비보다 이자 지출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며 "이는 거래 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 없는 자산의 매력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거래 상대방 위험이란 금융거래에서 거래 상대방이 결제를 불이행할 위험, 다시 말해 디폴트 리스크를 의미한다.

한센 전략가는 "금값 상승이 기존 금융질서에 대한 신뢰 약화의 거울로 변했다"고 썼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 국채가 글로벌 ‘무위험 자산’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시장은 더 미묘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값의 기록적인 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의문이 커지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말 금값 전망치를 온스당 4300달러에서 49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서방의 금 상장지수펀드(ETF)로 향하는 강력한 자금 유입과 중앙은행들의 꾸준한 수요가 상향 조정의 이유다.

한센 전략가는 "투자자들이 정치와 금융 시스템이 서로 얽혀 있는데다 잠재적으로 취약하다고 본다면 무제한 실물자산 보유 논리가 강해진다"고 보고서에 썼다.

이진수 선임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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