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4세…제련산업 불모지 한국을 비철금속 강국으로 견인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지난 6일 별세한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 비철금속 기업으로 키워낸 주역이다. 제련산업 불모지이던 대한민국을 비철금속 강국으로 도약시킨 장본인이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봉산에서 고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회장의 6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 경기고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사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최 명예회장은 미국 생활을 마치고 1973년 10월 귀국해 영풍광업에서 재무·회계업무를 도맡았다. 

이후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계획에 발맞춰 제련 사업을 운영하라는 제안을 받고 1974년 8월 1일 단독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경영전선에 나섰다. 

그는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자본을 유치한뒤 제련소 건설을 해외 건설사에 일괄수주 방식으로 맡기는 대신 직접 구매부터 건설까지 도맡았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으나 덕분에 비용을 절감하고 기술까지 익힐 수 있었다.  

최 명예회장은 대단위 제련소를 건설하기 위한 마스터플랜도 준비했다. 온산 비철단지 내 제련소를 설립할 때부터 기술 수준과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의 제련소를 건설한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계획을 착착 진행한 것이다.

1990년에는 기업공개를 추진했으며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설립했다.

최 명예회장은 1992년 3월 회장에 취임한 이우에는 아연공장 및 연 제련 공장을 증설했으며, 호주에 제련소도 설립하는 등  글로벌 사업 기반을 확대했다.

재계에선 최 명예회장에 대해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신조를 평생 지켜온 정도 경영인으로 평가한다. 

또 누구보다 신중하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투자를 서슴지 않는 혁신가로서의 기질도 발휘했고 이는 오늘날 고려아연의 DNA로 남아 있다. 

최 명예회장의 끈질긴 노력과 도전을 발판삼아 고려아연의 아연 생산능력은 창업 초기 연 5만t에서 65만t, 매출액은 114억원에서 12조원 수준까지 늘었다.

장례는 7일부터 4일간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20호실)에 마련되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에 열릴 예정이다.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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