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 공식 확정한 당정, 대체입법 마련한다지만 논란 여전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배임죄가 72년 만에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은 물론, 정부 관계부처도 '배임죄 폐지' 입장을 확정짓고, 대체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배임죄가 72년 만에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은 물론, 정부 관계부처도 '배임죄 폐지' 입장을 확정짓고, 대체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배임죄가 72년 만에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은 물론, 정부 관계부처도 '배임죄 폐지' 입장을 확정짓고, 대체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영계는 모호한 법 규정에 제약받던 경영 행위에 날개를 단 결정이라며 환영했지만, 시민사회에선 기업의 부정행위·부패를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없앴다며 비판했다.

폐지 이유를 놓고 당정은 과도한 경제형벌이 기업 혁신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도 같은 논리로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주문한 바 있다.

이날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생 경제와 국가 경쟁력, 미래 성장을 위한 선택"이라고 강조했고,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 경영 활동을 옥죄는 요인으로 지목된 배임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선의의 사업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배임죄 폐지'는 재계의 오랜 숙원 사업 중 하나다. 재계는 배임죄 구성요건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경영 도중 판단을 내릴 때마다 '이것도 배임죄로 걸리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법원과 수사기관이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자의적으로 적용해 법정으로 끌고 가곤 한다고 비판한다.

또 배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5억~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형량 수위도 해외 사례나 다른 범죄에 비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4~2023년 10년간 배임·횡령죄의 1심 무죄 비율은 6.7%로 전체 범죄 무죄율(3.2%)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는 법조문에 적힌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 손해를 가한 때' 등과 같은 요건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아직 실제 손해가 일어나지 않아도 손해를 가할 '위험'만 있으면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부도 최근 배임죄 판례 약 3300건을 분석한 결과,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배임죄로 의율하기 때문에 경영자로서는 어떤 행위가 배임에 해당하는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봤다.

분석 결과 약 3300건을 32개 범죄 유형으로 나뉘었는데, 이 가운데 기업 임직원이 회사 자금이나 재산을 '사적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42.7%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어 납품대금, 용역수수료, 경비 등을 과다하게 책정해 계약(10.5%)하거나 회사의 중요 기술, 영업비밀,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9.4%)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법무부는 배임죄가 공공 영역 및 민사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고, 배임죄를 저지르는 주체인 '타인의 사무처리자'의 유형도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과 무관한 민생 분야, 사업기회 유용·가상화폐 범죄 등 새로운 경제범죄 유형에도 배임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고 짚었다.

당정이 배임죄 폐지 입장을 확정짓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향후 규제 개선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반겼고, 대한상의도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배임죄 폐지 소식에 시민사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애초 배임죄가 경영상의 판단까지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법 조항에 구성요건을 세세히 담을 수 없기는 다른 법도 마찬가지인데다, 1953년 제정 이후 70여 년에 걸친 세월 동안 관련 판례가 충분히 쌓여 법리·해석에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배임죄는 '경영 실패'가 아닌 '신임 위배'를 처벌한다"며 "법원은 이미 다수의 판례를 통해 '경영상의 판단' 원칙을 존중하여, 경영자가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설령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배임죄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참여연대는 "오히려 재벌총수들이 수천억 원의 손해를 발생시키는 배임행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아 오죽하면 3·5법칙(징역3년·집행유예5년)이란 말까지 생겼다"며 대개 기업 경영자·지배주주를 처벌하는 배임죄의 특성 탓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던 관행이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을 예상한 정부는 배임죄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범위를 축소하는 대체입법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특별법을 통해 기존 배임죄의 주체·행위 요건을 구체화하거나 △각 개별법에 구체화된 배임행위를 규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배임죄가 실제로 폐지되면, 처벌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미 배임 혐의로 재판 중이던 사건들에 대해 법원은 '면소'(소송 중지)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수사·재판 중인 배임죄 관련 사건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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