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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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국내 시중은행의 일본 지점장을 도쿄에서 만났다. 당시 일본 지방은행들이 저금리와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수익원이 줄면서 도쿄 등 도심으로 진출해 영업망을 확대하거나, 통폐합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뒤 일본의 지방은행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저축은행들은 여전히 영업권 확장 규제에 막혀 있는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한 저축은행 관계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7년 전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 보면 영업이익 숫자만 다를 뿐 바뀐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가 얼마나 지지부진했는지, 또 저축은행이 신규사업을 하지 못한 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의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은 2011년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내놓은 '국내 저축은행 부실에 따른 해외 사례 검토 및 시사점' 보고서에 자세히 드러난다. 2011년에 벌어진 저축은행 무더기 영업정지 사태는 약 10만여명의 피해자를 양산했으며 2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국내 금융시장의 흑역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삼정KPMG는 '고금리 시대에 성장을 지속하던 국내 저축은행은 80년대 들어서면서 시중은행의 대형화와 상품 다양성 등으로 경쟁력을 점차 잃기 시작했다'며 '이후 저축은행업계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신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고수익-고위험 투자처인 부동산 PF에 대거 투자를 하면서 급성장을 하게 됐지만, 글로벌 경기 악화와 맞물려 국내 부동산 경기의 위축으로 저축은행업계의 부실이 현실화 됐다'고 적었다. 

최근 저축은행 부실 우려 배경이 부동산 PF라는 점에서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상위 10개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11.63%다. 이는 2023년 12월 말(6.6%)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익 체력도 급감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 저축은행 79곳의 누적 당기순손실은 3636억원이다. 전분기 누적 순손실인 3894억원 대비 소폭 줄었으나 전년 동기 대비로는 2000억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또 연체율은 전분기(8.36%) 대비 0.37%포인트 상승한 8.73%에 달했다. 2011년의 데자뷰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저축은행의 권역 제한 해제가 가장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3년 7월 비수도권 저축은행의 경우 동일 대주주가 최대 4개 저축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권역 제한 규제를 개선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수합병이 가능한 저축은행의 경우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수도권 지역 저축은행은 지방 저축은행 인수가 불가능하다. 최근 규제 완화로 지방 저축은행의 수도권 지역 저축은행 인수가 가능해졌지만 이는 부실 저축은행에 한해서 만이다. 문제는 지방 저축은행의 경우 자본력이 부족하다. M&A의 실효성 여부에 물음표가 붙는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6월말 기준 저축은행 79개사의 평균 자산은 1조5200억원 수준으로 비수도권 영업 저축은행 37개사 중 자산규모 1조원 이상인 저축은행은 6개사(16.2%)에 불과한 반면, 수도권 저축은행(42개사)의 59.5%(25개사)가 자산규모 1조원 이상을 기록중이다. 

영업 기반 제한도 문제다.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르면 수도권 저축은행은 총신용공여액의 50% 이상, 비수도권 저축은행은 40% 이상을 영업구역 내에서 공급해야 한다. 최근 지역 경제 위축으로 지방 저축은행 영업구역 내에서의 신용공여가 줄어들고 있는데, 신용공여 의무비율 준수를 위해서는 영업구역 외에서의 대출도 줄여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박준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4개 권역으로 구분되는 비수도권 영업구역 일부를 통합해 광역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비대면 금융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경영환경의 변화를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연구위원은 "비대면 개인대출에 한해 총신용공여액 계산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금융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업권 규제는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M&A 활성화를 위해 수도권 저축은행이 지방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한다 해도 당장은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규제 완화가 우선 이뤄져야 향후 저축은행들도 자발적인 M&A에 나설 수 있는 만큼 제도에 대한 손질은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성모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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