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끊겼어도,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TV홈쇼핑 업계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유사한 위기에 직면했다. 방송 매출은 급감하는 반면, 송출수수료 부담은 급증하면서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최근 홈쇼핑사와 케이블TV 간의 송출 수수료 갈등으로 인한 '블랙아웃' 사태로 이어져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TV홈쇼핑 7개 법인의 2023년 방송 매출액은 2조7290억원으로, 전년 대비 5.9%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13.3%나 줄어든 수치다. 전체 매출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도 49.1%로 2년 연속 50% 선을 밑돌았다. 이러한 매출 감소 추세는 TV 시청률 하락과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 등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송출수수료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3년 TV홈쇼핑 7개 법인이 유료방송사업자에 지불한 송출수수료는 1조9375억원으로, 방송 매출액의 71%에 달한다. 이는 2014년 1조374억원에서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방송으로 100원을 벌면 71원이 송출수수료로 나가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지역 활성화로 임대료가 상승해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라면, TV홈쇼핑 업계는 방송 플랫폼의 가치 상승으로 송출수수료가 급증해 기존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두 경우 모두 초기 성장을 이끈 주체가 오히려 그 성장의 결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TV홈쇼핑 업체들은 다양한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4대 TV홈쇼핑업체의 디지털 매출 비중이 대부분 50%를 넘어서는 등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TV 시청자 감소에 대응해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라이브 커머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고령화 추세에 맞춰 건강기능식품 편성 비율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송출수수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결국 CJ온스타일은 지난 5일 케이블TV 사업자 딜라이브, 아름방송, CCS충북방송에 대한 방송 송출을 전격 중단했다. 이는 송출수수료 갈등으로 홈쇼핑이 방송 송출을 중단한 첫 사례로,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사업자 간 갈등을 넘어 유료방송 생태계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케이블TV 3사가 송출 중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소송전이 길어질 경우 블랙아웃 기간은 최대 2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원은 딜라이브가 CJ온스타일을 상대로 제기한 방송제공 중단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내년 1월 초에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재판에서는 '홈쇼핑 방송 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이 단순한 사법상 계약이 아니라 허가·승인조건으로서 공적 의무 성격이 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더욱이 이번 사태가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다른 홈쇼핑 업체들도 IPTV 및 케이블TV 사업자들과 송출수수료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어, 업계는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TV홈쇼핑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갈등을 계기로 TV홈쇼핑 업계의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정부, 방송사, 홈쇼핑 업체 간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