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한일 합작 소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저명 작가인 공지영과 일본의 츠지 히토나리가 하나의 로맨스를 각각 여자와 남자 관점에서 풀어나간 스토리라고 한다.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지만, 동시에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기는 사랑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전쟁과도 같은 기억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같은 사랑' 후에 오는 것은 여친의 명품백 할부금, 더 이상 갈 수 없게 된 남친의 자가 아파트와 같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여기 이 책은 '사랑'이 아닌 '전쟁'을 말하는, 사랑과 아무 관련이 없는 책이다. 사랑 후에 사람이 겪는 감정의 서사가 아무리 지독하더라도, 끔찍한 전쟁을 겪은 사람이 겪는 고통에는 감히 비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인에게 마음으로 읽는 사랑 소설과 달리, 1차 세계대전이라는 주제를 다룬 정치‧경제 서적은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전쟁 후에 오는 '사랑보다 더 짙은' 감정적 상흔과 물질적 계산을 현실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로 현대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협상 결과인 베르사유조약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고 이 책을 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승전국들은 패전국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징벌적인 배상을 요구했는데, 이는 독일 국민에게 모멸감을 안기고 경제 체제마저 나락에 빠뜨릴 것이 자명했다.
케인스는 이로 인해 더 큰 전쟁이 날까봐 세계 번영을 위해 서로 적개심을 덜고 교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은 케인스의 경고대로 됐다. 결국 절망에 빠진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든 히틀러의 등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다음은 이 책의 인상적인 문구들을 발췌한 것이다.
인류 역사의 중대한 사건들 속에서, 그리고 국가들의 뒤엉킨 운명의 전개 속에서, 정의는 절대로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정의가 간단한 것이라면, 국가들은 부모들이나 통치자들의 비행을 이유로 적의 자식들까지 괴롭힐 권리를 갖지 못할 것이다. (206쪽)
조약은 독일이 책임져야 할 명확한 금액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조약의 이 같은 특성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독일이 지급해야 할 돈의 액수를 정확히 모르고 있고 또 연합국도 받아야 할 돈의 액수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독일에나 연합국에나 똑같이 불편한 일이다. 조약이 고려하고 있던 방법, 즉 수많은 개인들이 토지나 농가 건물, 가축 등에 입은 피해를 몇 개월에 걸쳐 취합한 뒤 최종 금액을 결정한다는 방법은 틀림없이 실현 불가능하다. 합리적인 과정은 양측이 세부사항을 조사하지 않고 배상액 총액에 합의하는 것이다. 만약에 이 총액이 조약에 명시되었더라면, 해결은 보다 실무적인 바탕에서 진행되었을 것이다. (153~154쪽)
우리는 국제 관계와 세계 평화의 미래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독일에겐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어떤 번영도 누릴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거나, 연합국은 모두 빛의 천사인 반면에 적들, 말하자면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은 모두 악의 자식이라거나, 독일은 영원히 빈곤해야 하고 독일의 아이들은 굶주리고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거나, 독일은 적들로 에워싸인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식의 견해를 갖고 있다면, 이 장에서 제시하는 모든 제안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특히 독일이 예전의 물질적 번영을 부분적으로 다시 회복하고 도시 인구가 생계 수단을 찾도록 도와주자는 제안은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245~246쪽)
'외교술'의 계산은 유럽인들을 아무 곳으로도 데려다 주지 못한다. 현재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기 어린 몽상과 유치한 음모가 일부 영국인과 프랑스인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아주 유치한 재미를 추구하면서 한 국가의 대외 정책을 싸구려 멜로드라마나 다름없는 장르라고 믿거나 마치 그렇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265~266쪽)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