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빙그레
사진=빙그레

'엄마 아빠와 함께 투게더, 투게더~사랑이 담긴 아이스크림 투게더~'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숙할 법한 CM송이다. 그 멜로디는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던 7080년대 아버지 월급날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겼던 국민 아이스크림 빙그레 '투게더'에 대한 추억을 소환해준다.

빙그레 투게더는 1974년 출시 이후 황금색, 바닐라맛, 주력제품 900㎖ 용량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누적 판매 개수 약 7억개, 연 매출 약 450억원으로 떠먹는 아이스크림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매된 투게더를 일렬로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을 130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가 된다고 한다.

◇한국 빙과산업의 효시…우여곡절 끝에 첫 아이스크림

빙그레의 전신은 대일유업이다. 1967년에 설립돼 월남에 진출해 미군부대를 상대로 아이스크림을 납품 중이던 대일유업 주식회사는 남양주군 일대에 젖소가 많다는 사실에 착안해 미금면 도농리(지금의 빙그레 남양주공장)에 유제품 가공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유제품이 아닌 설탕물을 얼린 빙과류가 호황을 누릴 때였다. 유제품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술도 없었거니와 생산원가도 비싸서 우유 성분을 넣은 진짜 아이스크림은 시판되는 것이 없었다.

대일유업은 당시 미국 업체 퍼모스트맥킨슨과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AID(국제개발처) 차관 95만달러를 들여와 제조시설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건설 도중에 자금 사정이 나빠져 부도를 내고 투자자를 찾게 된다. 마침 신규사업을 모색 중이던 한국화약그룹(현 한화)이 식품업 진출을 검토하게 된다. 식품업은 현찰 거래인 데다 자금회전이 빠르고 수익성도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한국화약그룹은 '기간산업을 일으켜서 국가사회에 기여하자'는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뜻에 따라 화약 등 기간산업 육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을 때여서 검토 초기에는 투자에 부정적이었다. 다만 당시 남아도는 우유를 처리하지 못해 젖소를 키우는 낙농가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공장 완공에 필요한 자금 지원선에서 투자를 결정한다. 

그러나 한국화약그룹의 투자 이후에도 공장 건설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한국화약그룹은 1973년 대일유업의 주식 절반을 인수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같은 해 6월 6일에야 '전천 후 영양식',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퍼모스트 아이스크림이 첫선을 보였다. 출시되자마자 퍼모스트 아이스크림은 우유에 딸기와 초콜릿, 바나나 등을 배합한 제품으로 인기를 얻었다. 

국내 빙과산업의 효시가 된 대일유업은 1982년 '빙그레'로 사명을 바꿨고, 1995년 계열 분리 후 지금의 빙그레가 됐다.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 정통 고급 아이스크림

빙그레는 1974년 투게더를 출시했다. 우리나라 아이스크림시장에 정통 아이스크림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시장에서는 설탕물에 색소를 넣어 얼린 소위 '께끼'라 불리던 저가 샤베트를 맛볼 수 있었을 뿐 정통 아이스크림은 소비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제품이었다. 

이미 유가공 제조업을 하고 있던 빙그레는 1972년부터 분유가 아닌 생우유를 원료로 사용해 미국의 아이스크림을 능가하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고자 했다. 아이스밀크를 겨우 흉내낼 수 있었던 당시로서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선진기술을 가지고 있던 제휴사인 퍼모스트멕킨슨은 빙그레의 이같은 시도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자그마한 동아시아의 제휴업체가 자신들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빙그레는 독자적으로 기술을 연구하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2년여간 반복한 끝에 1974년 마침내 투게더를 출시하게 됐다. 

설비의 자동화를 꿈도 꿀 수 없었던 시기여서 아이스크림 믹스를 용기에 담을 때 일일이 손으로 담아야 하는 등 양산까지 넘어야 할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 때 얻은 자신감은 몇 년 후 퍼모스트와의 제휴를 끝내고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하게 되는 밑바탕이 됐다. 

투게더라는 제품명은 사내 공모를 통해 채택한 이름으로 '온 국민이 함께, 온 가족이 함께 정통 아이스크림을 즐기자'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당시 시중에서 판매되는 이른바 '10원짜리 께끼'에 익숙해 있던 일반 국민들에게 선보인 최초 국산 고급 아이스크림 투게더는 가격이 600원(900cc기준 당시 소매가)으로 고가였는데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빙그레 관계자는 "투게더는 먹거리가 귀했던 1970년대 국내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게 한 대표 아이스크림"이라며 "당시 투게더가 출시되고 나서 대리점 차량들이 투게더 제품을 먼저 받기 위해 공장 앞에 길게 늘어설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출시 45년 만의 변신 '투게더 미니어처'

최근 국내 빙과시장은 매년 출산율 저하로 주력 소비층인 어린이 인구가 감소하면서 꾸준히 쪼그라들고 있다. 빙과시장의 침체는 투게더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아이스크림 로드샵 중심으로 꾸준히 1인용 제품시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빙그레 투게더는 정통 아이스크림의 자존심을 앞세우며 기존 제품의 스펙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1인 가구가 500만을 넘어서는 등 상대적으로 소용량 제품에 대한 니즈와 시장이 확대되자 빙그레는 투게더 출시 45년 만인 2019년 '투게더 미니어처'를 출시하고 소용량 아이스크림시장 공략에 본격 나섰다. 

투게더 미니어처는 오리지널 레시피를 그대로 적용하고 용량을 3분의 1 수준(270㎖)로 줄인 1인용 제품이다.

빙그레는 투게더 미니어처 출시에 맞춰 투게더를 활용한 팝업스토어 '투게더 피크닉 하우스'를 운영했다. 

투게더 피크닉 하우스는 팝업스토어로서는 이례적으로 19일간 약 2만여명이 다녀갔다. 당시 인스타그램의 투게더 관련 해쉬태그만 1만4000여개에 달했을 정도다.

빙그레는 투게더로 젊은층의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기 네이버웹툰 '유미의 세포들'과 협업해 투게더의 안쪽 포장지(리드)에 웹툰 이미지 3종을 랜덤으로 삽입해 친근함을 더했다. 

소비자들이 SNS를 통해 투게더의 '유미의 세포들' 포장지와 밥숟가락을 인증하면 특별 제작한 '투게더 스푼'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2015년부터 다소 정체를 보였던 투게더 매출은 2018년 300억원을 돌파하더니 2019년에는 400억원, 2020년에는 450억원에 이르렀다. 

2021년에는 투게더가 국가브랜드대상 아이스크림 부문에서 10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며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음을 입증했다.

작년에는 투게더 제품의 패키지에서 뚜껑이 벗겨지지 않도록 사용하던 수축필름을 제거한 새로운 뚜껑을 적용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였다.

빙그레는 유통 과정과 제품 개봉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약 2개월간의 유통 테스트를 시행해 제품의 안전성과 품질 유지에 대한 점검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빙그레 관계자는 "투게더는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대표 제품으로 오랜 기간 고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며 "대표 브랜드로서 정체성은 지켜가되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출시하고 고객에게 새롭게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마케팅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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