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인 줄 알았는데 흉년이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을 기대했던 유통업계 이야기다.

2022년 상장을 목표로 일정을 소화 중이던 업체들이 줄줄이 상장을 연기하는 분위기다. 증시 침체와 코로나 재확산 등 악재가 업계의 발목을 잡았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IPO를 준비하던 유통업체들이 상장을 연기하는 중이다. 연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증시가 침체하면서 올해 상장한 기업 대부분이 고평가와 주가 하락을 겪는 분위기다. 이 상황에서 IPO를 강행할 경우 공모가를 지키기도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계획했던 IPO를 미루는 것이다.

여기에 실적도 위기 요인이다.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 금리 인상 등으로 각 기업은 물론 가정에서도 씀씀이 줄이기에 한창이다. 시중 유동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유통업체로서는 상장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 특수를 누리던 업체들로서는 아쉽지만 막차를 놓친 셈이다. 

최근 CJ올리브영은 연내 IPO 및 상장 일정을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증시 부진이 이어지면서 기업가치를 기대했던 만큼 평가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올리브영의 상장 시점은 내년 이후로 무기한 연기됐다.

유통업계에서는 CJ올리브영 상장 연기로 CJ그룹 오너가 3세들 승계 계획도 미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장이 승계를 위한 핵심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와 딸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는 CJ올리브영의 지분을 각각 11.04%, 4.21% 보유 중이다. 

업계에서는 올리브영을 상장한 뒤 이들이 보유 지분을 매도해 상속세와 지주사 지분 확보 등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 시장 상황에서 상장을 강행할 경우 지분가치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칠 가증성이 높다는 점이 상장 연기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어 호텔롯데도 상장을 잠정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의 대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다. 그리고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주주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아니라 신 회장의 형 신동주 씨가 이끄는 광윤사다.

현재 신동빈 회장은 자력으로 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지 못했다. 다른 가족과 주주들의 협조를 통해 롯데그룹 회장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지분이 더 많은 신동주 대표가 매년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 복귀를 시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호텔롯데를 상장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호텔롯데는 롯데그룹의 일본과 한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회사다. 호텔롯데를 상장하면서 신주를 발행하면 현재 대주주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희석할 수 있다. 호텔롯데 상장이 롯데그룹의 지주사 전환의 '키'로 꼽히는 이유다.

이에 롯데는 지난해 12월 신사업 전문가로 알려진 안세진 사장을 롯데호텔 대표이사로 영입하며 상장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면세사업과 본업 모두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증시마저 침체를 겪으면서 연내상장은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 밖에 SSG닷컴도 지난 6월 연내 상장을 포기했다. 올해 초만해도 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SSG닷컴의 연내 상장을 밀어붙이겠다고 밝혔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이런 분위기에 11번가와 오아시스마켓 등도 연내 상장 추진 여부를 고민 중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다 보니 IPO를 앞당길 이유가 없다"며 "언제든 상장할 수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시장 분위기만 좋다면 바로 일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컬리 홀로 연내상장을 강행하는 유일한 유통업체다. 최근 컬리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로부터 코스피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거래소 규정에 따라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업체는 6개월 내에 상장을 해야 한다.

컬리는 거래소의 요구에 따라 지분의 20% 이상에 대해 공동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약정과 함께 주요 주주들의 보호예수 기간을 설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쉬운 점이라면 몸값이다. 컬리는 지난해 예상 몸값이 6조원 이상도 내다보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2조원 안팎까지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장외시장에서 기업가치도 2조원대다.

지난해 말 2500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프리IPO에서 4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지금 평가대로 공모가를 산정해 상장이 이뤄질 경우 기존 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현창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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