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직장인 1인당 평균 대출액은 지난해보다 10% 증가한 4862만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기 속에서 직장인들이 주식이나 부동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 위한 수요가 대출로 몰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29세 이하의 20대 대출이 29.4%나 늘어났다는 점이다. 세대별로 볼 때 대출 절대액 기준으로는 40대가 가장 많지만 20~30대는 증가율이 높았다. 불확실성이 큰 경제상황에서 물가, 소득 불안정에 따른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 '빚투'(빚내서 투자)가 유행처럼 퍼져 나타난 결과다.
'부채도 자산'이라는 말을 흔히 접한다.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빚이란 단어가 다소 부정적인 면에서 '갚아야 하는 남의 돈'이란 뜻이 지배적이라면 부채란 말에는 '향후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기대의 심리가 녹아 있다.
굳이 지렛대의 힘을 이용해 몇 배의 투자수익을 올린다는 레버리지 효과(leverage effect)를 적용해 설명하지 않아도 자산(자본 +부채)이 있어야 돈을 벌 확률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돈 빌려 돈 불리기' 에 동참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라 볼수 있다.
그나마 목적성 대출이나 투자형 대출은 낫다. 당장 먹고 사는 생활과 직결된 생계형 대출과 다중채무자의 증가가 문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423조원으로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말에 비해 84조5000억원이 늘어났다. 반면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지난 1월 말 0.17%까지 하락해 가계대출 수치와 같아졌다.
이는 표면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에 따른 자영업자 부실화가 정확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안 좋으면 당연히 연체율이 상승해야 하지만 금융회사들의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탓에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이 둔화돼 보일 뿐이다.
개인사업자 10명 중 1명이 다중 채무자라는 것도 문제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 수는 277만명이고, 이 중에서 27만여명이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꿨다고 한다. 13만명이었던 2019년 말 다중채무자수가 2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한 것도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증거다.
불황에 따라 수요가 급증한 것도 있지만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스마트폰을 활용한 간편한 프로세스, 인공지능을 활용한 빠른 대출심사 등 핀테크 기술의 발달도 대출 증가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카카오뱅크 주택담보대출 누적금액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경제면을 장식했다. 수도권 소재 아파트를 담보로 3분 29초 만에 한도와 금리를 확인할 수 있는 상품으로 대출신청에서 심사, 실행까지 모바일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라 불티나게 잘 팔린다는 기사다.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모바일대출이란 키워드를 넣으면 332개의 링크가 뜨고, 즉시대출을 치면 280개의 링크가 노출된다.
카카오와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제 2금융권이 대부분인 이들 또한 비대면 대출 프로세스를 갖춰 편의성과 신속성을 내세우며 24시간 내내 쉽고 빠른 대출로 금융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1862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7.8% 증가했다. 새 정부에서 부동산 대출규제까지 완화하게 되면 가계부채는 더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부채가 1800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금리상승기를 맞이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6%를 넘어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에다 윤 당선인의 50조원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시중 채권 금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연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7%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한 번 터지면 충격이 엄청나게 큰 리스크임에는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를 보이는데 알고는 있는데 풀지 못하는 '회색코뿔소'에 빗대 설명하곤 한다. 코뿔소처럼 눈에 잘 띄며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지만 정작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거나 대처 방법을 알지 못해 일부러 무시해 버리는 리스크를 말한다.
알아도 모른체하고 두려움 때문에 외면할 것인지. 포스트코로나 시대 금리상승기에 정부는 현실적으로 적합한 정책과 제도를 내놓아야 한다. 금융회사들도 이자장사에만 치우치지 말고 장기적 안목으로 상생의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여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장사를 못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는 최악의 상황에 다다른 대출자들의 절박함에 귀기울이고 끌어 안아야 한다.
최근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고위공직자 1978명의 정기재산변동 내용 중 국회의원 10명 가운데 8명이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이 1억원 이상 늘어난 이가 무려 176명이나 된다고 한다. 누구나 어렵다는 경제상황 속에서 빚이 늘어난 자와 재산이 늘어난 자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공정과 상식의 구현은 우리 사회 리더들의 몫이다.
/탁용원 더와이즈컴 대표. 전 OK금융그룹 본부장, 아주캐피탈·교보생명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