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만에 가장 광범위하고 빠른 주택 가격 상승세"
"글로벌 금융위기 전 상황보다는 낫다" 전문가들 낙관도

지난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법원 앞에서 세입자들이 퇴거 유예 시한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팬데믹 사태 지원책 가운데 하나로 지난 9월 도입된 퇴거 유예 조치는 시한인 지난달 31일 자정 결국 종료됐다./사진=AFP연합뉴스
지난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법원 앞에서 세입자들이 퇴거 유예 시한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팬데믹 사태 지원책 가운데 하나로 지난 9월 도입된 퇴거 유예 조치는 시한인 지난달 31일 자정 결국 종료됐다./사진=AFP연합뉴스

집값 상승세가 거침이 없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포함된 주요 40개국(38개 OECD 회원국과 가입 예정국) 가운데 올해 1분기에 집값이 떨어진 나라는 세 나라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짚었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는 더 하다. 38개 OECD 회원국의 주택가격은 올 1분기에 전년동기대비 9.4% 올랐다. 30년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데니즈 이건 국제통화기금(IMF) 리서치국 거시금융부 부책임자는 "지난 1년간 북반구 대부분 지역에서 강력한 집값 상승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FT는 미국의 경우 1분기 주택 가격 상승폭이 30년 만에 가장 컸다며, OECD 다른 회원국 가운데는 한국,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터키도 오름폭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클라우디오 보리오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은 집값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이로울 수 있다고 봤다. 집값이 오르면 집을 이미 가진 이들의 씀씀이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부의 효과'다.

그는 다만 집값 상승세가 지속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으면 반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미국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는 과정에서 부풀어 오른 신용거품이 터지면서 일어났다.

◇초저금리·저축증가·이사수요 맞물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집값 급등의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세계적인 초저금리 기조, 록다운(경제봉쇄) 기간에 쌓인 막대한 저축, 재택근무 바람에서 비롯된 더 넓은 집에 대한 수요가 맞물려 주택가격을 띄어 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중앙은행들의 초저금리 기조는 당장 주택담보(모기지)대출 금리를 끌어내렸다. 모기지 명목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낮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는 기현상이 일어났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록다운 사태로 발이 묶인 가계는 저축을 대거 늘렸다. 엔리케 마르티네즈-가르시아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선임 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주택시장에 투입할 막대한 추가 수입이 생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넉넉해진 이들의 이사 수요도 늘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사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더 넓고 조용한 집을 찾는 이들이 공급 부족을 부채질했다고 신용평가회사 스코프레이팅스의 마티아스 플레이스너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철강, 목재, 구리 등 건축 자재 가격도 치솟았다.

캐나다 스코시아뱅크의 브렛 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대리는 주택재고의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이 앞으로 수개월간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주택가격은 가계 수입보다 빨리 오르고 있다. 돈을 벌어 집을 사는 게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평균 주택가격 상승세는 임대료 상승세도 압도한다. 임대용 주택 공급이 줄 수밖에 없다. 집을 살 여유가 없는 무주택자들이 보금자리를 구하기 더 어려워진 셈이다. 

안 그래도 미국에서는 최근 세입자 퇴거 유예 시한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한창이었지만, 팬데믹 사태 지원책 가운데 하나로 지난 9월 도입된 퇴거 유예 조치는 시한인 지난달 31일 자정 결국 종료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 1면 머리기사로 전 세계 집값이 20년 만에 가장 광범위하게, 30년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택가격지수 변동률./사진=파이낸셜타임스 지면 캡처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 1면 머리기사로 전 세계 집값이 20년 만에 가장 광범위하게, 30년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택가격지수 변동률./사진=파이낸셜타임스 지면 캡처

◇거품이긴 한데...금융위기 전보다는 낫다?

애덤 슬래터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선임 이코노미스는 최근 선진국 부동산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만은 못하지만 1900년 이후 최대 호황기 가운데 하나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부동산 가격이 장기 추세보다 10%가량 고평가돼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부동산시장에 이같은 거품을 만들어낸 요인 중 일부는 일시적인 것이라며, 경기부양책 가운데 하나인 세제혜택,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항구 폐쇄로 인한 공급 장애 등을 예로 들었다.

슬래터는 또 신용(대출) 증가세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6~2007년 수준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IMF의 이건은 초저금리 기조 아래 모기지 대출이 급증했지만, 이를 주도한 건 신용등급이 좋은 이들이라고 거들었다. 그는 가계부채 수준도 금융위기 전보다 낮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의 불을 댕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저신용자들이 대거 모기지시장에 유입되면서 불거졌다.

중앙은행들의 변화도 낙관론의 배경으로 꼽힌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융위기를 겪으며 부동산거품을 더 경계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책무로 삼아 통화정책을 펴는데, 뉴질랜드 중앙은행(RBN)은 통화정책을 정할 때 보통 물가지표 항목에서 제외되는 집값도 고려하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통계당국인 유로스타트에 아예 집값을 공식 물가지표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애디티아 바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 정책당국이 주택정책을 둘러싼 리스크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며 2008년과 달리 부작용 가능성이 확실히 줄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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