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사진=AP·연합뉴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사진=AP·연합뉴스]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은 갑자기 터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격변을 겪었다. 

증시는 지난 3월 곤두박질치며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약세장에 진입했다. 반등의 여지가 안 보일 만큼 대폭락의 골이 깊었지만, 시장은 이내 급반전하며 최고점 경신 행진에 나섰다. 그 사이 채권시장은 증시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변으로 투자자들을 당황시켰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값은 연초 고공행진하다 약세로 급선회했다. 최근에는 2년 반 만에 최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증시에서는 거품 논란이 한창이던 기술주에 다시 돈이 몰렸고, ESG 투자도 각광받았다. 투자자들이 첨단기술의 미래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업의 책임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블룸버그는 26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비롯한 세계적인 투자 큰손들이 올해 대혼란을 겪은 뒤 채권의 역할과 기술, ESG 등과 관련해 투자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S&P500지수 추이[자료=FRED]
S&P500지수 추이[자료=FRED]

◇채권이 왜?...'60대 40' 전략 사망선고

안전자산인 채권과 위험자산인 주식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다. 주가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떨어져 채권 금리는 상승하고,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채권이 강세를 띠게 돼 채권 금리가 하락하는 식이다. 주가와 채권 금리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정상인 셈이다. 

팬데믹 사태는 이 관계를 무너뜨렸다. 미국에서는 지난 3월 뉴욕증시가 곤두박질칠 때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일주일 새 0.3%에서 1%대로 급등했다. 증시가 반등하는 동안에는 국채 금리가 하락세로 기울었다. 

시장에서는 이 추세가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통화·재정부양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은 초저금리 기조 아래 국채 등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 수요는 채권 금리 하락 요인이 된다.

채권과 주식은 상호보완 역할을 해왔다. 투자자산의 60%는 주식에, 나머지 40%는 채권에 담는 '60대 40' 자산배분 전략은 지난 수십년간 투자의 정석 가운데 하나로 각광받았다.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극적인 장기 수익을 추구하면서, 증시가 잠깐 흔들릴 때는 안전자산인 채권시장의 랠리를 기대할 수 있는 '안전한 전략'이었다. 

올해 미국 월가에서는 60대 40 전략에 대한 '사망선고'가 잇따랐다. 채권과 주식의 상관관계가 깨진 가운데 채권 금리의 장기적인 하락이 예상되면서다. 

피터 말론 JP모건 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다음 경기주기에 현대 역사상 가장 적극적인 통화·재정부양이 예상된다"며 "단순하고 정적인 주식-채권 포트폴리오의 미래 수익은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큰손들은 채권의 역할이 바뀐 만큼 투자자들이 위험을 좀 더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60대 40 전략에서 주식 비중을 더 높이거나 국채나 우량 회사채 등에 치우쳤던 채권 투자 범위를 확대하는 미세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블랙록 투자연구소는 최근 주식과 하이일드본드로 눈을 돌리라고 조언했다.

하이일드본드는 투자부적격 등급 채권을 말한다. 위험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정크본드라고도 한다. 

'사상 최저' 수준에 있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자료=FRED]
'사상 최저' 수준에 있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자료=FRED]

◇상상 못한 급반전..."연준에 대들지 말라"

팬데믹 공포가 처음 불거진 지난 3월, 뉴욕증시 간판인 S&P500지수가 불과 4주 만에 30% 폭락했다. 극단적인 비관론이 시장을 장악했다.

당시 증시가 급반등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지만, S&P500지수는 3월 23일 저점에서 불과 2주 만에 20% 튀어올랐다. 연준이 신속하게 통화부양 공세를 취한 게 주효했다.

연준은 지난 3월 9일과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긴급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연거푸 낮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제로(0)금리 기조로 회귀했다. 같은 달 23일에는 사실상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달러를 무제한 푸는 건 금융위기 때도 쓰지 않은 극약처방이다.

급기야 지난 9월에는 '평균물가목표제'까지 도입했다. 물가상승률이 기존 목표치인 2%를 일시적으로 넘어도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준은 제로금리 기조를 2023년 말까지 유지할 것임을 시사하며 시장의 조기 금리인상 우려를 불식시켰다.

연준의 발빠른 광폭행보는 '연준에 대들지 말라'(Don't fight the Fed)는 월가의 격언에 새삼 다시 힘을 실어줬다. 연준을 불신하고 비관적인 전망에 베팅한 이들은 증시의 급반등 기회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들의 신속한 지원이 언제나 보장되는 건 아니라면서도, 미국 증시의 신속한 회복세는 '연준에 대들지 말라'는 격언이 옳다는 걸 또 한번 입증했다고 지적한다.

◇거품 논란?...끄떡없는 기술주 랠리

3월 저점에서 반등한 글로벌 증시의 랠리를 주도한 건 기술주였다. 기술주는 여러 해 전부터 고공행진하며 거품 논란을 빚었지만,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팬데믹 환경에 저변이 확대된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에 베팅했다.

S&P500지수의 경우 올해 상승 기여도 상위 10대 종목이 모두 기술주다. 반도체업체 엔비디아와 온라인 지급결제업체 페이팔이 각각 121% 올라 상승폭이 가장 컸다. 이어 애플(80%), 아마존(72%), 넷플릭스(59%) 등의 순으로 많이 올랐다.

지난달에는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기대감이 불거지면서 기술주 랠리에 잠깐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19 백신이 세계 경제의 정상화를 재촉하면 그동안 저평가된 가치주가 다시 각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면서다.

그럼에도 기술주 투자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시아와 유럽 증시에서도 기술업종은 올해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뽐냈다.

앨런 왕 프린서플글로벌인베스터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기술의 영향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그는 낮은 자금조달 비용(금리)과 팬데믹 사태로 많은 신기술이 재평가 받았다고 설명했다.

왕 매니저는 또 기술주의 주가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에는 주가수익비율(PER) 같은 전통적인 척도를 썼지만, 이젠 지식재산권을 비롯한 무형자산 등이 새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PER을 근거로 한 기술주 거품 주장은 곧이 들을 게 아니라는 얘기다.

◇지속가능성 위기...'착한 투자' 뜬다

올해 글로벌 증시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건 착한 기업들의 선전이다. 팬데믹 사태가 '지속가능성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키운 결과다. 시장에서는 투자 대상 기업의 돈벌이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문제에도 부쩍 관심을 갖게 됐다.

ESG 투자는 기업이 환경을 보호하는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는지를 평가해 투자 대상을 고르는 것을 말한다. 점수가 낮은 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해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투자 비중을 줄이는 식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난 1월 환경 위험을 유발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며 투자전략의 변화를 예고했다. 블랙록은 2030년까지 현재 840억달러 수준인 ESG 투자를 1조달러 넘게 10배 이상 늘린다는 방침이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 7월에 낸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태는 21세기에 처음 맞은 지속가능성 위기라며 ESG 투자를 가속화하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봤다. 

ESG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지표에 그대로 반영됐다. 글로벌 증시 대표 지수인 MSCI전세계지수는 올해 약 12% 올랐지만, 환경사업에 적극적인 글로벌 기업들의 주가를 반영한 FTSE환경기회지수는 35% 뛰었다. 

또한 블룸버그에 따르면 청정에너지, 기후변화, ESG 등과 관련한 전략을 채택하거나 이를 투자 대상으로 삼은 글로벌 펀드의 운용자산은 올해 32% 늘어난 1조82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핵심 경제주체로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가 환경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ESG 투자 바람이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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