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로이터·연합뉴스]
재닛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로이터·연합뉴스]

내년 1월 공식 출범할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첫 재무장관으로 재닛 옐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낙점될 전망이다. 이 소식에 23일(현지시간) 뉴욕증시를 비롯한 미국 금융시장이 일제히 환호했다. 옐런 전 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준이 취한 통화부양정책에 정통한 데다, 재정부양에도 적극적인 입장이어서다. 시장에서는 옐런이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한 침체를 촉발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극복하는 데 앞장설 적임자라고 평가한다.

◇"바이든, 재무장관에 옐런 지명 방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옐런 전 의장을 차기 재무장관으로 지명할 방침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옐런 전 의장이 재무장관으로 지명돼 상원의 인준을 받으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 된다. 

바이든 정권인수팀 관계자들은 옐런이 섣부른 재정부양 중단을 막고, 연준을 비롯한 관계기관과 팬데믹 사태 대응을 위한 협력을 주도할 적임자로 보고 있다고 한다. 특히 미국 의회가 대선 전부터 추가 재정부양을 놓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만큼 옐런에 대한 기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옐런 전 의장은 최근 의회가 실업사태를 해결하고 중소기업을 지켜내기 위해 재정지출을 더 늘리지 않으면 경기회복세가 고르지 않게 되고 결국 활기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9월 한 인터뷰에서는 "엄청난 고통이 있다"며 "경제는 지출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에 바이든이 옐런을 재무장관으로 발탁하는 건 "훌륭한 선택(excellent choice)"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수석 역할을 한 콘은 현직 시절 연준을 이끌던 옐런과 함께 일한 바 있다. 콘 전 위원장은 옐런이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경제 성장을 촉진할 단호한 리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옐런에 대한 공식 지명 발표가 오는 30일 이전에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옐런 전 의장은 이 신문의 전화 언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준·재무부 첫 女수장...CEA 위원장까지 3관왕?

올해 74세인 옐런은 미국 브라운대(학사), 예일대(석사, 박사) 출신 경제학자다. 하버드대에서 잠시 교편을 잡은 것 말고는 연준에서 대부분 경력을 쌓았다. '경제 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시절인 1990년대에는 이사를, 2000년대 들어서는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내다가 2010년부터 부의장으로 벤 버냉키 당시 의장을 보좌했다.

버냉키 의장의 후임으로 2014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준 의장에 올라 2018년 제롬 파월 현 의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퇴임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7년에는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옐런이 재무장관으로 발탁되면,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준, CEA를 모두 이끈 유일한 인물이 된다.

금융위기보다 무섭다는 팬데믹 사태가 옐런을 다시 소환한 건 그가 위기에 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옐런은 버냉키 전 의장과 함께 연준의 금융위기 대응에 깊이 관여했다. 제로(0)금리, 양적완화 등 연준이 팬데믹 사태에 다시 도입한 비전통적 통화완화정책이 모두 금융위기의 산물이다. 연준 내 경험이 많은 만큼 내부 인사들을 두루 잘 아는 것도 장점이다. 재무부와의 협력 여지가 그만큼 큰 셈이다. 연준 안팎에서는 연준의 통화완화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보다 적극적인 재정부양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아울러 옐런은 의장으로서 연준의 금융위기 출구전략을 주도했다. '완화' 쪽에 쏠렸던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으로 돌리는 정상화를 통해 유동성의 고삐를 다시 죄면서도 이른바 금융시장의 '긴축발작'(taper tantrum)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였다. 

옐런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재임 시절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1년 만에 금리인상을 단행하는 등 통화긴축에 나섰지만, 기술주가 2배 뛰는 등 뉴욕증시는 랠리를 펼쳤다. 또 취임 때 6.7%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퇴임 직전 4.1%로 떨어졌다. 이로써 옐런은 현대사에 기록된 역대 연준 의장 가운데 임기 중에 실업률을 가장 많이 떨어뜨린 이로 꼽힌다.

미국 언론들도 2018년 퇴임하는 옐런에게 일제히 후한 점수를 줬다. 그의 온건한 통화정책 기조가 시장을 안심시키며 미국 경제의 강력한 회복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한 예로 당시 WSJ 설문조사에 참여한 월가의 유력 이코노미스트들 가운데 60%가 옐런에게 'A'를 줬다. 전임자인 버냉키가 퇴임 때 받은 점수는 'B'에 그쳤다.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성장세와 증시 랠리를 자신의 공이라고 뽐내지만, 정작 평가를 받아야 할 인물을 옐런 의장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규제강화' 워런 대신 옐런...월가·시장도 환호 

바이든이 옐런을 재무장관으로 지명할 것이라는 소식은 시장에서 먼저 반겼다. 이날 뉴욕증시 막바지에 이 뉴스가 알려지자, 다우지수가 장중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주요 지수가 일제히 올랐다. S&P500지수도 일시에 상승폭을 1% 가까이로 늘렸다.

블룸버그는 투자자들이 대개 긴급재정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옐런의 입장을 반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달 19이 블룸버그TV 회견에서 "팬데믹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특단의 재정부양을 지속해야 한다"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다만 일부 투자자들은 지난 3월 팬데믹 사태로 금융시장이 폭락한 것과 관련해 옐런이 규제 강화 필요성을 제기한 걸 경계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바이든 행정부 재무장관 하마평에 함께 올랐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보다는 옐런이 훨씬 낫다며 대체로 안도하는 분위기다. 워런 의원이 월가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를 주장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당선인이 워런을 경계하는 월가와 대형은행과 부자들에게 너무 호의적인 인물을 기용해서는 안 된다는 진보주의자들에게서 모두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로 옐런을 택했는지 모른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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