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공급망 전환에 가장 가난한 농촌서 신흥도시로 탈바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2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인근 삼성 복합단지를 찾아 스마트폰 생산공장 등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2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인근 삼성 복합단지를 찾아 스마트폰 생산공장 등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베트남 북부지역 농촌이 삼성전자와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신흥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수도 하노이 북부 박장성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얼마 전만 해도 쌀과 리치 등을 생산하는 가난한 농촌이었지만,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공급망이 들어서면서 상전벽해를 이뤘다고 블룸버그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지 관리들은 애플과 애플 협력사인 대만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 담당자들을 맞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도 불구하고 외국인투자액이 매년 거의 2배 가까이 늘고 있을 정도다. 

박장성 정부는 올해 수출액이 6년 새 10배가량 늘어난 1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삶이 넉넉해진 현지 주민들은 먼지를 휘날리던 오토바이 대신 일본 토요타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메르세데스벤츠의 세단 등을 타고 새로 포장된 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현지 주민인 응웬 반 란은 블룸버그에 "공장 덕분에 지금 생활은 천국 같다"고 말했다. 한때 고기를 사기도 어려웠던 그의 가족은 이제 공장에서 번 월급을 모아 마련한 돈으로 노동자용 숙소를 지어 운영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가 그동안 뒤처졌던 지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박장성의 호황을 들었다. 그러면서 중국의 인건비 상승, 미·중 무역전쟁, 팬데믹 사태에 따른 물류 취약성 등이 베트남의 첨단 제조업 유치 능력을 높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은 팬데믹 사태에 가장 잘 대응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미국 컨설팅업체 이메이트(eMATE)컨설팅의 진 틴덜 공급망 전문가는 저비용, 정치 안정성, 투자친화정책, 기반시설 개선, 기술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 베트남의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가난한 지역서 기술 공급망 허브로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전쟁 이후 수십년에 걸쳐 외국인 투자와 대외 무역을 허용한 뒤에도 박장성은 이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1인당 소득이 650달러로 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더욱이 농토가 침수에 약해 농사를 포기한 현지 주민들은 1700㎞나 떨어진 남부지역 공장을 찾아 나서야 했다. 

사실상 첫 호황을 경험하게 된 박장성은 올해 1인당 소득 3000달러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 북부지역에 생산거점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다. 박장성에 공장이 급격히 들어서기 시작한 2016년 이후 투자액만 38억달러에 이른다. 이전 4년치보다 4배나 늘어난 것이다. 투자에 힘입어 지난 1~9월 박장성의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9%를 기록했다. 베트남 전체 성장률 2.12%의 5배가 넘는다. 

삼성전자는 이미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전체 스마트폰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애플의 협력사인 대만 페가트론은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에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최근 현지에서 엔지니어와 공급망운영 매니저, 대관업무 담당 등에 대한 구인광고를 냈다.

블룸버그는 박장성의 경우 거의 완전고용 상태라고 지적했다. 인근 지역에서도 일자리를 구하려는 이들이 박장성으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의 아이팟을 조립생산하는 중국의 럭스셰어정밀공업은 박장성 번쭝 공단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올해 말까지 4개월에 걸쳐 2만명을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다. 

번쭝 공단을 비롯한 베트남 북부지역 전자기기 조립라인 노동자의 임금(세후, 초과근무 수당·보너스 포함)은 연간 5500달러로 3000달러를 밑도는 베트남 전체 평균치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자료=미국 통계국]
[자료=미국 통계국]

◇눈덩이 대미 무역흑자 '부담'...노동강도·보상 불만도

베트남 북부지역의 호황에는 리스크(위험)도 따른다. 

당장 미국은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가 크게 불어난 걸 못마땅해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베트남 무역적자는 약 560억달러로 전년대비 40% 늘었다. 베트남 당국에 따르면 베트남은 올 1~8월에만 대미 수출에서 377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늘어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그랬듯 베트남에 보복 관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베트남의 환율조작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조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이 대미 무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국 화폐인 동의 평가절하를 유도하고 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게 핵심이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의 환율조작 사실이 드러나면 1974년 제정한 통상법 301조를 근거로 추가 관세를 포함한 제재 조치를 검토할 태세다.

조립 라인에 일거리가 몰리면서 노동강도가 세지자 노동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럭스셰어정밀공업의 갑작스러운 초과근무 수당 지급 조건 변경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다.

베트남 경제 전반의 성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북부지역이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생산거점으로 거듭나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관광 수입은 팬데믹 사태로 절반가량 줄고 의류 등을 만들던 기존 공장들은 수만명을 해고했다. 이 결과 베트남의 성장률은 지난해 7.02%에서 올해 2~3%로 떨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선진국 전 단계에서 성장이 정체되는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교육 수준을 높여 단순 조립인력을 고급 기술인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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