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선망과 시기의 대상이다. 부자를 꿈꾸는 이들은 많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금수저'들은 부자들에 대한 시선을 불편하게 만든다. 주목할 건 세계적인 갑부들 가운데 다수가 자수성가형이고, 이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부자 지형과 부자들의 이야기를 [부자의 속살]에서 만나보시라. <편집자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글로벌 억만장자 순위가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8위로 떨어졌다. 버핏이 투자를 꺼려온 기술주 강세에 정보기술(IT)업계 거물들이 순위 역전에 나선 데다, 그가 재산의 사회환원에 공을 들여온 탓이다.
블룸버그는 8일(현지시간) 버핏이 이날 순자산을 686억달러(약 81조8400억원)까지 줄이며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서 한때 8위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블룸버그가 지수를 내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버핏은 지난달만 해도 5위권을 지켰다. 버핏은 이날 중에 순위를 6위까지 다시 높였지만(순자산 715억달러), 상위 10권에서 올 들어 가장 많은 재산(178억달러)을 잃었다.
그 사이 IT 거물들이 하나둘 버핏을 따라잡았다. 스티브 발머 전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이다.
블룸버그는 이같은 순위 역전이 글로벌 갑부 지형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기술업계 거물들이 부자 리스트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 상위 10위권 가운데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버핏,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 회장, 프랑스 화장품회사 로레알의 상속녀인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메이예를 제외한 6명이 모두 IT업계 출신이다.
기술주가 글로벌 증시 랠리를 주도하게 되면서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이름을 올린 기술업계 부자들은 올 들어 재산을 25% 늘렸다. 주요 업종 가운데 최고치다.
세계 최고 갑부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는 올 들어 재산을 무려 635억달러 늘렸다. 아마존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의 대표적인 수혜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회적 거리두기, 경제 봉쇄(록다운) 여파로 전자상거래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기술주 투자 꺼린 버핏..."모르면 투자 안 해"
버핏은 기술주 투자를 꺼리기로 유명하다.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다. 2000년 1월 닷컴버블이 정점으로 치달았을 때 시장에서는 기술주에 등을 돌린 버핏에게 '공룡'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닷컴버블 붕괴는 그가 옳았음을 방증했다.
버핏이 몇년 전 애플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시장은 그가 마침내 기술주에 대한 고집을 꺾은 게 아니냐며 반색했다. 그가 투자한 뒤 애플 주가가 승승장구하자 버핏은 '오마하(버핏의 고향, 버크셔 본사 소재지)의 현인'이 아닌 '실리콘밸리의 현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 애플 주가가 흔들릴 때는 '상투를 잡았다'는 놀림을 받았다.
◇'기부천사' 버핏..."재산처분 12~15년 걸릴 것"
블룸버그는 버핏이 어쩌면 자신의 재산이 줄고 있는 걸 환영할지 모른다고 봤다. 그가 이번에 억만장자 순위에서 뒷걸음질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가 기부 탓이라는 이유에서다. 버크셔는 이날 낸 성명에서 버핏이 보유한 버크셔B주 약 1600만주를 5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액수로 29억달러에 이르는 거금이다. 그는 2006년 이후 370억달러가 넘는 재산을 기부했다.
블룸버그는 버핏의 기부 약속 때문에 그의 재산은 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버핏은 친구이기도 한 빌 게이츠 부부가 운영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을 통해 전 재산의 90%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버핏은 게이츠와 함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는 '기빙플레지'(Giving Pledge) 운동을 주도해왔다. 버핏은 특히 IT업계의 성공한 기업인들에게 젊어서 큰돈을 번 만큼 남들보다 먼저 큰 기부를 하라고 당부한다. 그는 2004년 세상을 떠난 첫 아내 수잔이 일찍이 자신에게도 빨리 기부를 시작하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버핏은 지난 2월 공개한 주주서한에서 죽을 때까지 회사 지분을 모두 처분하려면 12~15년 걸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더 일찍 기부에 나서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는 다음달 90세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