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기본소득 뭐길래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실업자들[사진=위키피디아, 미국 국가기록원(NARA)]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실업자들[사진=위키피디아, 미국 국가기록원(NARA)]

세계 곳곳에서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재산이나 소득, 노동 여부 등과 무관하게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일정액을 지급하는 게 기본소득이다. 그동안 주로 수면 아래서 논의돼온 급진적인 구상이 사회담론으로 급부상한 건 코로나19 팬데믹이 극단적으로 삶의 기반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3회(①기본소득 뭐길래 ②찬반논쟁 ③핀란드 실험)에 걸쳐 기본소득 논의를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기본소득(basic income)은 소득 불균형이 심해지고 기술발달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데 따라 주목받게 된 대안적인 사회보장 제도 가운데 하나다.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게 전제다.

◇기본소득 도대체 뭐길래

1980년대부터 유럽을 기반으로 풀뿌리 기본소득 운동을 펼쳐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가 기본소득의 특징으로 제시한 5가지를 먼저 짚어보자. 

①주기성(periodic)

주간 또는 월간 단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급해야 한다. 일회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전 국민에게 긴급생활자금을 풀고 있는데, 이는 일시적이기 때문에 '긴급 기본소득'이라고 하기도 한다.

②현금지급(cash payment)

기본소득은 받는 이가 이를 어디에 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식료품이나 특정 서비스, 용도가 제한된 상품권이나 이용권, 할인권 등 바우처보다 현금이 직접 교환수단으로 적절하다. 

③개별성(individual)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하게 돌아가야 한다. 기본소득 지급 단위가 가계가 아닌 개인이 돼야 하는 이유다.

④보편성(universal) 

같은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줄 때는 정부보조금 지급 대상을 선별할 때처럼 재산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⑤무조건성(unconditional)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거나, 실업자인 경우 일할 의지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없다.

BIEN은 이같은 특징을 종합해 기본소득을 '재산 조사나 노동 의무 없이 모든 개인을 대상으로 한 무조건적인 현금 지급'이라고 정의한다. 재산 수준, 노동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유아부터 고령자까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무조건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UBI·universal basic income), '시민소득'(citizen's income), 시민기본소득(citizen's basic income), '기본소득보장(basic income guarantee)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회적 배당'(social dividend), '시민배당'(citizen's dividend)이라고도 한다.

미국 보수성향 반월간지인 내셔널리뷰는 최근 '정글북'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러디어드 키플링이 1919년 쓴 시에서 "모든 사람들이 존재에 대한 대가를 받을 때"라고 쓴 게 기본소득 개념을 대변하는 듯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리콘밸리 좌파들로 한정됐던 기본소득 논의가 최근 미국 의회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미국 의회가 1인당 1200달러를 지급하는 내용의 코로나19 재정부양책을 만장일치에 가깝게 승인한 걸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이 단일한 실체로 고정돼 있는 건 아니다. 지급액 규모, 국가·지역 등 시행 단위, 자금조달원, 부수조건 등 여러 다른 차원에서 성격이 다양해질 수 있다. 한 예로 기본소득이 빈곤선을 넘어 기본적인 사회·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면 '완전기본소득'(full basic income), 그보다 못하면 '부분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이라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에서 핀란드 실험까지...기본소득의 역사

기본소득 주장이 제기된 건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 역사가 16세기 르네상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머스 모어가 이상적 국가상을 그린 '유토피아'(1516년)에서 처음 제시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포르투갈 여행자 라파엘 논센소는 당대 최고 권력자 가운데 하나였던 캔터베리 대주교와의 대화에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교수형으로 단죄하기보다 '최소 소득'을 주는 게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기본소득 주장은 18세기 말 토머스 페인을 통해 구체화했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을 이끈 사상가다.

페인은 1795년에 쓴 '농지정의'(Agrarian Justice)라는 책에서 정부가 국가기금을 조성해 21살이 된 모든 이들에게 15파운드를, 50살이 된 이들에게는 여생 동안 매년 10파운드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보상이 사유제로 농지를 잃은 이들이 독립적인 생존을 위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1795년의 10파운드, 15파운드는 현재 가치로 각각 1210파운드(약 185만원), 1816파운드쯤 된다고 한다. 

페인은 영국 출신이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 사회보장국(SSA)은 그를 기본소득·시민배당을 제안한 미국인 시초로 본다.

페인의 주장은 영국 초기 사회주의자인 토머스 스펜스가 이어 받았다. 토지공유제를 주장한 스펜스는 1797년 '아동의 권리'라는 책으로 '농지정의'에 호응했다. 스펜스는 토지의 사회적 공유를 통한 지대 수입을 재원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자고 제안했다.  

19세기에 잠시 주춤했던 기본소득 논의는 20세기 들어 다시 활발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삶이 한참 피폐해졌을 때다. 

1920년대 전후 영국을 중심으로 번진 기본소득 논의는 버트런드 러셀, 데니스 밀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얀 틴버겐과 제임스 미드, 제임스 토빈, 밀턴 프리드먼 등 당대 석학들이 주도했다. 

영국 노동당원이었던 밀너는 부인 메이블과 함께 1918년 낸 '국가보너스 계획'(Scheme for a State Bonus)을 통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0%를 '국가보너스'로 지급해 빈곤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재산 등과 무관하게 모든 이들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정의에 부합한다.

프리드먼 같은 이는 부자들의 소득에 세금을 물리듯 저소득층에 그만한 보조금을 주자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제안했다. 이에 공감했던 토빈은 나중에 보다 더 관대한 '데모그란트'(demogrant), 일종의 시민배당을 주자고 제안했지만 마이너스 소득세나, 데모그란트 모두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리는 게 주목적이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모든 가정의 둘째 이상 자녀들에 대한 수당을 지급했고, 1960~70년대에는 미국과 캐나다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마이너스 소득세 실험을 벌였다.  

1980년대부터는 유럽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세계 곳곳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국가들이 기본소득 개념과 유사한 복지제도 실험에 나섰다. 최근 기본소득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핀란드가 2017년부터 2년간 벌인 실험 결과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다만 아직 기본소득을 법제화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스위스가 2016년 모든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12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을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에 부쳤는데 77%의 반대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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