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맞서 中 반도체산업 거금 투자...화웨이 살리기 나섰다

미국 정부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숨통'을 끊기 위해 반도체 기술 봉쇄령을 내놓은 데 맞서 중국은 거금을 자국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며 '화웨이 살리기'에 나섰다. 미래 4차 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간 기술 패권 경쟁이 가열된 모습이다. 중국 관영 언론은 미국과 중국이 '기술 냉전'에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중국 국영 반도체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과 '상하이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이 최근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에 각각 15억, 7억5000만 달러씩, 총 22억5000만 달러(약 160억 위안)를 투자하기로 했다. 

SMIC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해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파운드리 업체로,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자금 지원으로 SMIC는 생산능력을 6배 가량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현재는 14나노 반도체칩을 한 달에 6000장 밖에 생산 못하는데, 이를 3만5000장까지 늘릴 수 있다고 SMIC는 밝혔다. 

또 올해 설비투자액도 기존 계획보다 11억 달러 늘어난 총 43억 달러를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중국 정부의 SMIC에 대한 거금 지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나온 움직임이라 더욱 주목됐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제3국 반도체 회사들이 미국 기술을 조금이라도 활용했다면 화웨이에 제품을 팔 때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도록 조치했다. 사실상 화웨이의 반도체 조달 채널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행해 온 자국기업의 화웨이와 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도 1년 더 연장했다.   

게다가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해온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까지 미국의 편에 섰다. TSMC가 최근 미국 현지에 최첨단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의 수출 규정을 따를 방침이라고 밝힌 것이다. 사실상 화웨이가 TSMC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는 게 더 어려워진 셈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정부 규제에 따라 TSMC는 이미 화웨이로부터 반도체 신규 주문을 받는 것을 중단했다.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화웨이에겐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는 통신장비를 만드는 데 없어선 안 될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체 기술력 확보를 중요시 여겨온 화웨이는 반도체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이미 2004년 산하에 반도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설립해 퀄컴,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 의존도를 차츰 낮춰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미국기업으로부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같은 핵심 반도체 부품을 구할 수 없게 된 화웨이는 하이실리콘을 통해 부품을 조달해왔다. 하이실리콘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회사로, 대부분의 반도체를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맡겨 주문 생산해왔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이마저도 막아버린 것이다.

화웨이가 지난해말부터 일부 물량을 SMIC로 돌려 주문 생산하고는 있지만 SMIC의 기술력은 아직까진 TSMC에 못 미친다. 중국 정부가 최근 거금을 투자해 SMIC를 적극 키우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화웨이 때리기' 배경엔 사실상 미래 4차산업 기술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발전을 억누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본다. 화웨이는 미래산업의 핵심인 차세대 이동통신기술인 5G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확장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초강력 압박 조치로 미중 양국이 ‘기술 냉전’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로 오히려 중국에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핵심기술의 탈(脫) 미국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전날엔 미국의 제재에 맞서 중국이 보복 조치로 애플, 퀄컴 등 미국 하이테크 기업을 제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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